Leader Odyssey 내촌목수 이정섭, 2008/10

솔직한 나무와 치열한 예술의 질긴 인연

내촌목수 이정섭

강원도 홍천군 내촌. 구불구불 산길을 끝도 없이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산골짜기 마을은, 언뜻 소박해 보이지만 그 속에 치밀하게 계산된 미학적 절제와 비례를 담아내는 이정섭의 가구가 ‘창장’되는 곳이다. 내촌이 간직하고 있는 정감 어린 풍경은 목수 이정섭에 보석같이 소중한 예술적 영감이 돼준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지만 그 절제와 여백이 오히려 더 큰 생각의 공간으로 이어지는 이정섭의 가구는 이렇듯 소박한 우리네 인심에서 비롯됐다.

“작품이라고 앉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목수 이정섭과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30년 세월의 더께가 묻은 산골 농협창고를 특유의 담백하고 강렬한 시선으로 재구성한 ‘아트 플레이스 내촌창고’. 생활 속 절대 비례를 구현하고 있는 그의 가들이 이 독특한 울림의 갤러리를 채우고 있었다. 박제된 예술이 돼버린 갤러리란 존재의 경직성 때문이었을까. 갤러리 한쪽에 전시된 테이블에 “앉으라”고 권한 그에게 “작품인데 함부로 앉아도 되냐”는 질문을 던지자마자 돌아온 대답은 세상에 알려진 ‘이정섭표’ 가구만큼이나 솔직하고 딱 떨이졌다. 원 래 가구란 것이 기대고, 앉고, 쓰이라고 만들어지는 것이고, 서울대 미대 를 졸업한 그가 붓을 접고 나무를 만지는 목수가 된 까닭도 ‘실용’ 이리는 가구의 제일 가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에. 우매한 질문이었음을 인정 할수밖에 없는 첫 만남이었다.

산골의 자유를 취하니 예술적 영감이 따라오다

강원도 홍천군 내촌. 서울에서 3시간 남짓 거리의 산골짜기 마을은, 언뜻 소박해 보이지만 그 속에 치밀하게 계산된 미학적 절제와 비례를 딤아내는 이정섭의 가구가 ‘창작’ 되는곳이다.

구불구불 산길을 끝도 없이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내촌은 세상의 개발 바람 에서 덕분에 한발 비껴가게 됐을 터. 내촌이 간직하고 있는 정감 어린 풍경과 우리네 인심은 이정섭에게 ‘근대’ 라는 훌륭한 문화적 콘텐츠로 다 가왔고, 7년 전 ‘내촌목공소’ 라는 간판을 뚝딱뚝딱 내걸고 그곳에 정착했다. 머물고 싶은 창작 공간을 찾아 헤맸던 2년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이곳 내촌의 집 한 채, 풀 한 포기가 그에겐 지금껏 보석 같은 예술적 영감이 돼준다.

“시종일관 원목을 깎고 다듬어 대는 목공소는 요란한 기계 소음 탓에 민가와 거리를 둬야 한결 자유롭죠. 도시의 편리함을 버리고 산골의 자유를 취했더니 사계절 경이로운매력을 발산하는자연은 물론이고 40~50년 전모습을 오롯이 담고 있는 집과거리에서 우리 민족 특유의 소박한 듯 절제된감성까지 덤으로 발견했습니다.”

내촌이 간직한 근대적 풍광은 그가 지향하는 조선 말엽 기구의 간결한 비례미와 똑 닮아 있다. 이정섭의 손끝에서 재단되고 깎이고 마름질되는 가구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지만 오히려 더 큰 훈훈함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그것이 내촌의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소박한 인심을 담고 있는 까닭에서다. 영국 찰스 왕세자 소유의 ‘두치 오리지널스’ 나 스위스 매트리스 회사 ‘휘슬러 네스트’ 처럼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기업들로부터 앞다퉈 러브 콜을 받고, 내로라하는 재벌가의 안방까지 들어앉은 이정섭의 가구. 그를 통해 재창조되는 한국적 조형미는 특별하다.

어쩌면 목수 이정섭이 지닌 올곧은 내면은 번잡하고 뒤죽박죽인 도시의 패러다임에서 태생적으로 빗겨난 데서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른여덟, 그리 길지만은 않은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머릿속은 ‘파란만장’ 이라는 순탄치 않은 단어와 연결된다. 사람 이정섭의 파란만장 인생은 남보다 늦게 맞은 사춘기 에서 비롯됐다.

일상을 관통하는 예술 꿈꾸던 서울대 출신 목수

갑갑하게만 느껴졌던 제도의 틀 앞에 ‘참으면 타협이다’ 란 생각으로 잘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시로 서율대 서양화과에 입학했지만, 현대미술의 엄청난 깊이와 넓이를 감당하기 버거웠던 탓에 목적 없이 그림을 그려대는 일과도 담을 쌓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작정 시작한 것이 사진. 서울 도심을 한 바퀴 아우르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20세기 말 서울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관객과의 소통을 잊은 채 박제된 채로 미술관에 걸려 있는 ‘딴 세상’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과 그 사람들이 일귀가는 일상을 관통하는 예술에 대한 목마름의 시작 또한 하루도 빠짐없이 지하철의 모습을 앵글에 담아 내면서부터 비롯됐으리라. 방황의 시절 그의 눈에 비친 인간 군상들은 흑백의 물감으로 옮겨졌고, 그가 날마다 나무를 만져 가구를 만드는 ‘내촌 목공소’ 한쪽을 지키며 그날의 방황과 고민을 지금껏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다.

그의 스승인 정영목서울대 교수의 말처럼 ‘대단히 뛰어난소질을 보이던 서양화가 이정섭’이 들연 목수의 길로 들어선 것 또한 어찌 보면 황당하다. <6시 내고향〉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전통 한옥 짓는 것을가르쳐주는 학교를 접하고 그 길로 다짜고짜 짐을 싸서 강원도 태백으로 내려간 것. 3개월 남짓 과정에 그나마 2개월째 합류해 대패나 톱 같은 연장 다루는는 법부터 시작한 그는 절친한 친구 아버지의 집 짓기를 겁도 없이 덥석 도맡아자신의 첫 작품을 지어 올리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첫 집을 지을 때만 해도 하늘을 찌를 듯 높았던 흥미와 의욕은 제 손으로 지은 집이 한 채 두 채 늘어갈수록 고된 노동으로 바뀌었다. 서민의 살림집이 아닌 번듯한 반가(班家)의 기둥을 ‘부석사 부링수전’ 이라 는 모범답안과 얼마나 똑같이 깎아내느냐에 따라 목수로서 의 능력을 평가받는 현실의 집 짓기가 늘 자신만의 정체성을 좇아 고민해왔던 그에게 영 따분하고 의미없게 느껴졌을 밖에.

정직하고 간결해서 외려 더 따뜻한 이정섭표 가구

“시대에 맞게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개선해 제 나름의 개성이 녹아 있는 한옥을 짓고 싶었지만, 그 꿈은 잠시 접어둬야 했습니다. 그래서 찾게 된 것이 바로 가구지요. 똑같이 나무를 만지는 일이지만 덩치 큰 집보다 한결 부담 없이 여러 가지 창조적 시도를 할 수 있는 데다, 이름 있는 가구 디자이너조차 나무 물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오로지 디자인적으로만 접근히는 것이 안타까웠거든요. 정작 개성 있는 한옥을 지어도 그 공간을 채우는 가구가 구태의연하다면 그 뜻이 반감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치열했던 청춘의 방황과 예술가로서의 고뇌는 30대의 막바지에 이른 목수 이정섭을 집을 짓는 대목{大木)에서 가구를 만드는 소목(小木)의 길로 이끌었다. 가구를 통해 나무 그리고 세상과 소통한 지 고작 3년 반. 치열한 고민과 탁월한 조형 감각으로 그는 소목으로서 많은 것을 이뤄냈다. 처음 1년 동안은 머 릿속 황금 비례를 찾아 히루 14시간 넘게 내촌 목공소 구석 에서 무조건 가구만 만들어댔다면, 세계적 목공예가인 조지 나카시마가 참여한 2006년 리빙 디자인 페어에서 ‘눈에 띄는 상’을 받고부터는 ‘내촌 목공소’와 ‘갤러리 내촌창고’를 통해 좀 더 적극적으로 문화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수입 가구로 넘쳐난다는 서울 청담동 한복판에 내촌의 그것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갤러리 내촌목공소’도 문을 열었다. 더 넓은 곳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과 가구로 그리고 문화로 소통하려는 뜻에서다. 이정섭의 가구에 쏟아지는 찬사는 참니무, 호두나무,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등 가구로 만들어지는 활엽수의 성격을 머리보다 손으로 먼저 깨닫는 목수로시의 올곧은 장인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름다운 가구란 나무 자체의 광택과 결에서 비롯된다”며 그 흔한 니스 대신 어렵사리 구한 옻이며 들기름으로 가구를 마름질하고, 가구 디자이너가 이니라 굳이 목수라 불리길 고집하는 이유 또한 이와 일맥상통한다.

담백한 목수 이정섭의 아름다운 공간 찾기 시도

오래고 치열했던 에술적 고뇌를 통해 학습되고 쌓인 이정섭 특유의 비례감과 공간감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지만 그 절제와 여백이 오히려 더 큰 생각의 공간으로 이이지며 세상을 매료시키고 있다. 장식 없이 나무 자체의 결을 살려 만든 키 낮은 참나무 탁자, 보기 싫은 요소는 모두 배제해 간결하고 단아한 호두나무 테이블, 조선시대 선비의 좌탁에 현대식 책꽂이를 어울린 책장. 가까운 언젠가, 목수 이정섭은 시대에 맞는 ‘합리적 한옥’을 지어 조형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몹시도 단순 명료한 그의 가구들과 꼭 맞아떨어지는 우리식 공간을 일궈내는 시도에도 착수할 계획이다.

내촌의 시간은 느릿느릿 흐르지만, 내촌 목수 이정섭의 머릿속은 집을 짓고 그 공간을 채울 아름다운 시도들에 대한 아이디어로 분주하기만 하다.

에디터 김미선

사진 노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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