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윤덕의 사람人 “난 행복한 목수” 이정섭씨, 2011/03

김윤덕의 사람人

“난 행복한 목수” 이정섭씨

1999년 6월, 서울 을지로2가. 서울대 미대를 막 졸업한 신출내기 무명화가는 자신의 첫 개인전을 황량한 지하보도에서 열었다. 타이틀이 ‘지하철 2호선’이다. 지하철 풍경을 흑백의 사실화로 구현한 그림들을 힐끗대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화가는 종일 양철의자에서 맞이했다. 왜 지하철인가, 물었다. “지하철, 저 군상들의 표정에 삶의 진실이 있다.” 10여년 뒤 화가는 목수가 됐다. 그것도 아주 유명한, 아주 비싼 목수가 됐다. 삼성가, 현대가를 비롯해 ‘있는 집’ 사람들이 그의 가구를 수집한다. H중공업 회장 영빈실은 그의 가구로 가득하다.

강원도 홍천에 자리한 ‘내촌목공소’는 서울 청담동에선 그 자체로 ‘명품브랜드’다. 70년대 초등학교 걸상처럼 생긴 의자 하나가 200만원. 호사가들이 ‘미니멀의 극치’라며 열광하는 호두나무 식탁은 700만원부터 호가한다. 한국 최고 현대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공간사옥이 지난해 이정섭 가구를 들였다. 스위스의 세계적인 매트리스 회사 ‘휘슬러 네스트’는 침대 프레임 제작을 의뢰, 밀라노에 선보였다.

화가였던 목수는 요즘 집짓기를 넘본다. 소목(小木)에서 대목(大木)으로의 전환이다. 건축을 배운 적 없는 일개 목수가 벌써 열두 채의 집을 지었다. 공간사가 만드는 건축지 ‘스페이스’ 4월호가 ‘이정섭의 집’을 특집으로 다룬다. 누구는 ‘한국 건축계의 벼락 같은 축복’이라고 하고, 누구는 ‘면허 없는 건축가의 재미있지만 치기 어린 실험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논란의 한가운데 선 이정섭(40)을 홍천 내촌목공소에서 만났다. ‘지하철 2호선’ 이후 12년 만이었다. 더벅머리에 꼬질꼬질 때 묻은 작업복 차림의 이정섭이 고향인 마산 사투리로 히죽 웃으며 인사했다. “그동안 많이 늙었네예.”

이정섭의 가구는 밋밋하다. 하지만 군더더기 없고 튼실하다. 정직한 가구, 건강한 집을 짓는 것이 목수의 기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내 가구의 가격을 결정하는 건 ‘생각의 양’

무식한 질문부터 하자. 당신 가구는 왜 이리 비싼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가구니까.(웃음) 내 가구의 가격은 생각의 양, 시간의 값이 결정한다.”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한 가구의 선(線)에 호사가들이 열광하더라. 반대로 ‘저렇게 단순한 의자 누군 못 만들어?’ 하는 사람도 있다.

“내 가구는 ‘바보온달’이다. 밋밋하고 평범하다. 다만 정석대로 만든다. 원목을 판재로 잘라 5년 이상 말린 다음 가구를 짠다. 날것 그대로의 물성을 살리려면 비싸지만 질 좋은 나무를 사용해야 한다. 탁자는 기둥·들보의 아귀가 맞아떨어져 못을 안 써도 빠지지 않는 사궤맞춤으로 짠다. 필요하면 천연수지 본드, 나사못도 사용한다. 옛날 국민학교 걸상 같은 의자를 하루 최대 2개밖에 만들지 못한다.”

참나무, 호두나무, 물푸레 등 목재는 북미산 활엽수를 쓴다.

“왜 꼭 한국 나무를 써야 하나. 북미산 목재는 건조와 품질, 등급에 일관성이 있다. 견고하고도 나뭇결이 아름다워 다른 치장이 필요 없다. 식탁 상판을 이어붙일 때 나사못을 사용한다고 한국적이지 않다는 사람도 있더라. 옛 가구에 못을 안 쓴 건 철이 비싸서였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옛 가구를 재현하는 목수가 아니다.”

참나무 테이블.

이정섭 가구는 견고하다. 그래서 너무 무겁다.

“포장이사가 있는데 뭘 걱정하나.(웃음) 내 취향이다. 투박하지만 튼실한 게 좋다. 상다리에 용머리를 새겨넣을 재주 같은 건 나에게 없다. 나무를 원목 그대로 보여주는 게 가장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수입되는 많은 가구는 활엽수 원목을 대부분 베니어로 벗기거나, 무늬를 흉내 내 인쇄한 멜라민 필름으로 만들어 가구의 표면에 접착하는 식으로 제조된다. 경제적 효율성 때문인데, 난 그렇게 만들기 싫다.”

평자들은 이정섭의 가구가 한옥과 아파트에 다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

“전통에서 영감을 얻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구체적인 디자인으로 구현되는 건 아니다. 나는 다만, 손으로 만드는 물건들이 점차 없어지는 이 시대에 미끈하게 뽑혀 나오는 스테인리스 스틸 대신 손으로 두들겨 만든 무쇠 칼이 그립고, 쇠를 두들기는 대장장이의 손이 그리운 목수일 뿐이다.”

호두나무 식탁.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성은 무엇인가.

“안동 한옥마을이나 궁궐, 중앙박물관, 인사동 같은 데서 한국적 영감을 얻진 않는다. 오히려 산골마을 야트막한 함석집, 섬진강가, 또는 거제도에서 가자미미역국을 먹을 때, 박경리의 ‘토지’, 김용택의 시를 읽을 때 뭉클하다.”

카피(copy) 잘하면 인간문화재 되는 나라

부모님이 다 교사인데 마산고를 중퇴했다.

“아버지가 관할지역 장학사였는데 학교 그만둔다고 해서 두들겨 맞았다.(웃음) 난 학교가 재미없었다.”

검정고시 후 서울대 미대에 들어가 서양화를 전공했다. 왜 목수가 됐나.

“내겐 회화적 천재성이 없었다. 현대미술의 걸작들을 봐도 감흥이 없더라. 손재주 좋았던 큰아버지가 자기 집을 짓고 동네의 다른 집들도 짓는 모습이 훨씬 감동적이었다. 미대를 나와야 그림을 그리고, 음대를 나와야 노래를 부르는 건 아니지 않나. 나는 그런 것들이 인간이 응당 누려야 할 재미인데 이 사회가 ‘예술’이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빼앗아갔다고 생각했다. 내게 필요한 작업복 정도는 만들어 입는 재미, 신발장 정도는 짜는 재미, 내가 살 집 정도는 짓고 사는 재미는 누려야 하지 않나. 그중에서 가장 끌리는 것이 목수였다.”

휘슬러 네스트의 침대 프레임(참나무).

‘지하철 2호선’을 전시하며 꿈꿨던 공공미술의 사명, 예술과 대중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한가.

“예술은 누구나 길에 다니면서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정섭 가구는 너무 비싸서 대중들이 접근하기 힘들다.

“나무를 살 돈은 있어야 하지 않나?(웃음) 나는 목수다. 나무에 욕심이 많은 목수. 일본 원목가구의 대가 조지 나카시마가 부러웠던 건 그의 명성이나 솜씨가 아니라 펜실베이니아 그의 창고에 가득 쌓인 나무들이었다.”

목수 되기 전 환경운동, 장애인운동을 했었다.

“장애우 평등학교 세우는 일에 관여했는데 그게 사기라는 걸 알고 분노했다. 김수환 추기경, 신영복 선생까지 엮일 정도로 큰 프로젝트였는데 한 명의 사기꾼에게 모두 배신을 당한 거지. 명분만 앞서서 준비 없이 뭔가를 시작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걸 절감했다. 정치, 경제, 이념보다 훨씬 중요한 사안들이 세상엔 수천 가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호두나무 콘솔.

그러다 한옥에 꽂혀 강원도 태백으로 갔다.

“농사짓는 법 배우다 TV에 목수학교가 소개되기에 짐 싸서 달려갔는데 한 달 반 만에 나왔다. 본을 잘 뜬다고 나한테 뛰어난 목수라고 하더라. 미대 나왔는데 그 정도도 못하겠나. 그런데 베끼고 재현하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금을 잘 긋고 물감이 안 삐쳐나가게 그려야 합격하는 미대입시 같더라. 무량수전과 똑같이 지어야 1등이라는 게 말이 되나? 카피를 잘하는 사람이 인간문화재가 되는 것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전통 목조 주택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싶은데 아무도 일을 안 주더라. 그때 가구를 보게 됐다. 좋은 나무로 보기 좋게 만든 가구가 없었다. 가구를 만들면 돈도 벌고 자리도 잡을 것 같아서 홍천으로 왔다.”

가구 만들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서울대라는 배경도 먹혔을 것 같고.

“한국은 간판에 약한 나라니까.(웃음) 가구를 알리기 위해 나름 작전을 세웠었다. 서울 나와 전시했고,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조지 나카시마가 온다기에 그 옆에 부스를 달라고 했다. 예상했던 대로 첫날 관람객 투표에서 ‘눈에 띄는 제품상’을 받았다. 문제는 나카시마 가구는 그날 오전에 다 팔렸는데, 내 것은 하나도 안 팔렸다는 것이다. 2년 안에 한국을 평정하기로 했는데. 작전을 수정해야만 했다.”

수정된 작전은 뭐였나.

“이 나라에선 세계 1등 아니면 안 팔린다. 명품 같지도 않은 명품을 교복으로 입고 다니는 나라이니. 어쨌거나 ‘쇼’는 답이 아니었다. 평론가들의 수준 높은 비평을 받아야 했다. ‘작품’ 수준으로 내 작업을 끌어올려야 했다. 문제는 근본적인 비례감을 구현하는 일이었다. 반가사유상이 주는 그런 묵직한 감동!”

시행착오도 있었겠지.

“전세보증금으로 태백의 아름드리나무들을 사서 만들다 마음에 안 들면 난로에 태워 버려야 했다. 대팻밥만 8t 트럭은 나왔을 거다. 노가다 13년에 관절 다 망가졌다.”

사람의 집, 건강한 집을 짓고 싶다

‘스페이스’ 4월호에서 이정섭의 집을 특집으로 기획한 공간사 이주연 편집총괄이사는, “건축의 본질적인 요소인 아름다움(美), 쓸모 있음(用), 견고함(强)을 가구에서 보여준 이정섭이 이제 집짓기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의 완성도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건강한 집’, ‘윤리가 있는 집’을 지으려는 이정섭의 태도가 대량생산의 독성에서 허우적대는 현대건축의 새로운 솔루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다.

“가구를 팔아 여유가 생기면 언제고 내가 꿈꾸는 집을 짓고 싶었다.”

아이들 그림처럼 삼각지붕에 네모난 몸통을 지닌 꽤나 소박한 모양새다.

“맞배지붕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다. 나는 그 단출한 사각형의 덩어리 안에서 승부를 보고 싶었다.”

어떤 집을 지으려는 건가.

“사람이 살 수 있는 집. 아프지 않고 건강한 집.”

솔직히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MSG 너무 많이 들어간 수입 디자인에 익숙해져 그렇지.(웃음) 한남동, 청담동 고급주택가들 집이 다 서던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집 아닌가. 그 집안은 온통 독소로 넘친다. 사람 살 집이 아니라, 보여주는 집이다. 나 루이뷔통 들었다, 프라다 입었다, 자랑하는 집이다. 전원주택도 마찬가지다. 시골에서 좋은 공기 마시며 살려고 나와서는 MDF, 접착제, 페인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소 마시며 산다.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역시 문제는 돈이다. 무공해 집을 지으려면 돈이 많이 든다.

“돈이 아니고 도덕의 문제다. 현대 건축물에 사용된 마감재와 최종 시공을 보며 놀랄 때가 많다. 병든 자재, 잘못된 적용이 수두룩하다. 2010년 광화문에 무슨 일이 있었나. 대한민국의 장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석 달 말린 소나무 원목을 켜서 현판을 만들었다. 원목 상태로 석 달을 말렸다면 민가의 툇마루도 짤 수 없다. 50년 나무를 만졌다는 분이 그걸 몰랐을까.”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정섭이 지은 집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도면 없이 지은 집도 있고.

“도면을 그리지 못하는 것은 머리로 풀지 못해서다. 벽을 세워 봐야 다음 작업에 감이 오고 구조를 엮을 수 있다. 건축가와 함께 설계도면을 만들어 시행해보기도 했다. 쉽지 않더라. 우리 큰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작은 집을 도면 없이 짓는 게 나는 편하다. 교육받지 않은 자의 원초적인 미감, 그 힘도 매우 크지 않을까.”

이정섭이 홍천으로 들어오면서 내촌면이 문화예술마을이 됐다더라.

“아, 그런 표현 정말 싫다. 무공해, 오가닉, 슬로, 공동체…. 상투적이다. 아무것도 아닌 듯 느껴진다.”

감자 보관소로 쓰였던 농협창고를 예술공간으로 바꾸는 ‘아트 플레이스 내촌창고 프로젝트’는 일종의 문화운동이다.

“내촌은 도서관 하나 없을 정도로 시골이고 문화가 없다. 농사로 먹고살 수도 없고, FTA로 축산업도 사라지면 경제행위라고는 없는 동네가 된다. 그래서 나온 생각의 일부다. ‘내촌창고’라는 법인으로 동네 건물을 매입해 1년에 서너번 전시회 열고, ‘내촌상회’를 만들어 특산품을 개발하고 있다.”

내촌사람이 다 됐겠다.

“내 작업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마을 일을 거든다. 목공소 고객 중 의사를 데려와 동네 분들 건강검진해 드렸더니 좋아하시더라. 마을회관, 경로당에 들어가는 상 짜드리고, 동네 서낭당이 허물어졌을 때 새로 지어드렸다.”

장식 많고, 번쩍거리는 가구, 화려하기만 한 집들에 대한 싫증과 반감 덕에 ‘이정섭’이 잠시 바람을 타는 건 아닐까.

“소설가 김형경이 그러더라. 인간 유전자에 있는 그 무엇 때문에 자연이 좋다고. 나무라는 게 자연의 대표 산물 아닌가. 이거 싫어하는 사람 아무도 없을 거다. 교토와 몽골의 목조건물, 무량수전과 병산서원, 큰아버지가 지은 집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볼 수 있는 목재구조 건축만도 얼추 1500년 역사다. 콘크리트, 유리 일색의 현대건축이 어찌 당해낼 수 있겠나. 목수라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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