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gue Soul of Wood, 2011/03

SOUL OF WOOD

목수 이정섭은 강원도 작은 산골에 직접 나무로 된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들어 생활한다. 자연과 일체가 되는 소박한 한옥엔 전통의 아름다움과 현대적 기능성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21세기 목수의 손끝에서 탄생한 ‘사람을 위한 집’이다.

냇가에서 주워 온 검은 돌이 얌전히 놓인 사랑방은 단정하고 아늑하다.

맞배 지붕의 정갈한 쇼룸은 목수 이정섭이 추구하는 살림집을 그대로 재현했다. 광목천으로 막은 창문의 은은한 햇살이 쇼룸을 부드럽게 감싼다.

주방을 겸한 거실의 모든 가구는 그가 직접 만든 것. 천장에서부터 물방울처럼 떨어지는 조명도 멋스럽다.

2005년 완공한 게스트하우스는 내촌목공소를 찾는 손님들이 주로 이용한다. 벽 대신 유리와 유리를 맞댄 거실은 전통 한옥의 대청마루와 같은 개념이다.

플라스틱 비누 받침대 대신 돌맹이를 이용한 자연주의 욕실.

책장이 놓인 안방의 가구는 참나무를 주로 사용했다.

양은 냄비가 진열된 찬장, 도자기 그릇이 놓인 조용한 창가. 무심한 듯 보여도 자투리 공간 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지난겨울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은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작은 산골에는 목수 이정섭의 특별한 한옥이 있다. 2002년 값싸고 인적 드문 골짜기땅에 ‘내촌목공소’를 세운 그는 그 이듬해 야외 공장 옆에 살림집을 짓고 나무처럼 그대로 여기에 뿌리를 내렸다. “처음 이 집을 지을 때만 해도 나무 종류도 제대로 몰랐어요. 그래도 이 집은 참 잘 지어졌지요. 단열 문제 같은 기술적인 부분들은 보완이 필요해도 규모와 디자인은 지금도 마음에 들어요.” 방 두 칸짜리 단출한 살림집을 완성하는 데 꼬박 6개월이 걸렸다. 소나무로 대들보와 기둥을 세우고 냇가에 지천으로 널린 예쁜 돌을 주워다 비누 받침대며 곳곳의 작은 선반을 만들었다. 벽은 집 앞의 흙을 퍼다가 발랐다. 공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이 땅의 흙이 사람이 사는 집을 위한 최고의 재료였다. 침나무로 만든 크고 작은 가구는 물론, 집안의 어느 것 하나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미장과 전기, 수도 작업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했다. 7년 된 집과 함께 태어난 집안 물건들은 그래서 모두 주인과 나이가 같다.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가 목수가 된 건 우연한 기회였다. 한 방송에서 한옥 짓는 것을 가르쳐주는 곳이 있다는 걸 보고 무작정 영월로 떠나 흙과 돌, 나무의 감촉을 익혔다. 친구의 부모님을 위한 집도 한 채 지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거리가 멀었다. “2005년 겨울, 가구 만들기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전통 건축을 배웠지만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일반적인 전원 주택이나 한옥 보수 작업 위주로만 주문이 들어오더군요. 진화된 한옥, 제가 생각하는 오늘날의 집을 보여줄 수가 없었어요. 가구는 판이 작으니까 먼저 자리를 잡고 건축으로 돌아가자 생각했죠.” 내촌의 살림집은 나무로 집을 짓는 대목에서 가구를 만드는 소목으로 돌아온 그가 실험적으로 완성한 첫번째 꿈의 집이다. 조상들의 주거문화와 전통 구조에 터를 두고 있지만, 외지붕도 황토벽도 아니다. 기왓장 대신 양철이 지붕을 대신한 이 집은 21세 기의 목수로서 그가 재해석한 한국 건축의 기본이다.

일자형 구조의 집을 완성하는데 가장 우선한 건 동선의 편리함이었다. “수만 번을 딛고 다녀야 하는 곳이니 규모가 과해지면 난방 문제나 청소가 곤란하죠. 최소한의 높이와 최소한의 크기로 지었습니다. 밖에서 일하다 들어와 밥 먹고 술 먹고 바로 누워 잘 수 있도록 말이죠.” 안방과 사랑방을 연결한 거실은 전통 한옥의 마당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주촛돌은 밖으로 드러나 있고 장작으로 불을 지피는 아궁이도 거침없이 거실 한쪽에 들어앉아 있다. “옛날에 아궁이가 밖에 있었던 이유는 솥 걸어 밥하고 쇠죽 끓여야 하는 주방이며 화장실이 밖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생활 방식이 변한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안방을 덥히는 구실을 하는 실내의 아궁이는 외국의 벽난로처럼 운치 있다. 맞배 지붕으로 지어진 천장엔 건조 중인 소나무가 멋스럽게 쌓여 있고, 계절마다 풍경이 바뀌는 창문은 그림을 대신해 자연의 액자 역할을 해준다. 욕실을 겸한 화장실은 아예 외부와의 경계를 커다란 유리창 하나로 시원하게 해결했다. 집안에서 노천욕을 하는 기분이다. 닮은 집은 모자라거나 더한 구석 없이 담백하다. 합판을 사용한 싱크대와 주방 선반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가구는 침나무로 만들어졌다. “낮엔 집을 짓고, 밤엔 가구를 만들어요. 날씨가 궂은 날엔 가구를 만들고, 해가 날 땐 집을 짓고요.” 어제까지도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겐코의 건축을 하고 내촌목공소가 가구를 작업하기 위한 세미나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청담동 ‘무이무이’의 모든 가구들 역시 그의 솜씨다. 북미에서 건조되어 들어오는 높은 등급의 참나무와 호두나무, 물푸레, 단풍나무 등을 깎아 만들기 때문에 비싸고 무겁지만, 그만큼 그의 가구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견고하다. 단순한 생활용품을 넘어 하나의 작품인 셈이다.

그리고 그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집을 짓고 있다. 자신의 집을 지으며 아쉬움이 남았던 스위치며, 문고리,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닮은 전구 등 사소한 물품 하나까지 이번엔 내촌목공소의 이름으로 직접 제작했다. 원하 는 모양으로 금형을 떠서 철이든 함석이든 마음에 드는 재료를 사다 절단하고 부식시키고 프레스 작업까지 거쳐 완성하는 과정은 분업화된 공장 시스템이 익숙한 요즘으로서는 다소 낯설기까지 하다. “남의 집을 지어주는데, 어떤 재료도 함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정성스럽게 내가 모든 책임을 다 지겠다는 장인의 자세로 하는 거죠.” 포름알데히드가 들어간 집이 뿜어내는 독소가 환경 오염보다 더 해롭다고 생각하는 그는 유기 화합물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천연 페인트와 천연 접착제만을 고집하고 아무리 욕심이 나더라도 마호가니나 흑단 같은 열대우림 지역의 나무와 보호수는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비용은 10배나 비싸지만 사람과 자연이 우선이다. “앞산에 보이는 건 낙엽송, 이건 버드나무, 잣나무, 소나무, 그리고 저건 귀룽나무예요.” 집을 나와 걷는 호젓한 오솔길, 주위엔 온통 앙상한 나뭇가지 뿐인데도 그는 잘도 이름을 맞힌다. 특별히 마당이랄 것도 없이 천지가 다 그의 집 정원인 탓이다. 낡은 농협창고와 버려진 상회 등 지난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역사적 유물을 문화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그는 최근 ‘내촌목공소가 만든 집’ 두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시공과 설계를 같이 하며 지은 집은 책상 앞에 앉아 머릿속으로 지은 집과 다릅니다. 생각의 양이 훨씬 많은 집이죠.” 겉으로 보기에 좋은 집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에도 좋은 집. 목수 이정섭의 집이 바로 그렇다.

긴 빛이 드리우는 쇼룸의 작은 응접실. 벽에 걸린 파란 천은 커튼을 대신한다. 햇살이 강할 땐 모서리의 자석을 이용해 창문에 붙이는 방식이다.

목수 이정섭은 내촌목공소를 세운 이듬해 작업장 옆에 살림집을 짓고 나무처럼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실내로 들어온 아궁이는 난방 역할은 물론, 서양의 벽난로처럼 집 안의 운치를 더한다.

에디터 이미혜

사진 이봉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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