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d Planet 온달 가구와 평강 목수 내촌목공소 이정섭, 2012/03

정직한 집 짓기의 회복

대담 목수의 집 짓는 태도와 가능성에 주목하다

진행 권미주 기자

디자인 박소영

사진 김용관(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내촌목공소

일시 2011년 2월 15일

장소 내촌 이정섭 목수 살림집

이정섭 내촌목공소 목수

이민아 협동원 건축사사무소 소장

나무를 다루어 집을 짓거나 가구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 목수에 대한 정의다. 흔히 집을 짓는다고 하면 건축가를 떠올리지만, 옛날 우리네 살림집은 건축가 없이 목 수의 지도를 받아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로 짓는 집이었다. 전문화된 손길과 솜씨가 아니었기 때문에 구조나 마감이 정밀하거나 치밀하지는 않았지만, 실생활을 통해 얻은 지 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진실한 생활 속 철학을 담고 있었고, 우리의 자연환경과 조 화를 이루는 건축 형태를 취했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행되고 마을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살림집 건축은 더 이상 마을 공동체의 일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 되고,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뗄 수 없는 꼬리표들이 따라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생활양식이 바뀌고 새로운 재료와 기술이 출현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야 한다면, 그건 집 짓는 사람이 집 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이런 일관된 태도에 집중하며 집을 짓는 목수가 이정섭이다. 그는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서 내촌목공소라는 간판을 걸고 집을 짓는다. 손으로 만드는 물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그는 목수를 생업으로 삼았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해 그림을 그리다 한옥 짓는 일을 배우고, 다시 가구 만드는 소목이 된 그는 2002년 지금의 터에 자리를 잡았다. 가구를 만들 작정으로 목공소(2004)를 시작으로 자신의 살림집 1(2003) 과 가구 전시장(2005)에 이어 게스트 하우스(2007), 목구조 제작 공장(2009), 내촌목공소가 만든 집 2009(세컨드하우스, 2010), 살림집 2(2011)에 이르기까지 집을 포함해 모 두 14채의 건물을 지었다. 스스로 내촌면민임을 강조하는 그는 마을의 한 구성원으로서 내촌에 남아 있는 창고와 오래된 민가를 손봐 새로운 용도로 거듭나게 돕고, 여전히 성 황제를 지내는 마을의 낡은 성황당을 새로 지어주기도 한다. 집을 짓는 목수로서 그가 지키고자 하는 신념은 가구를 만들 때와 다르지 않다. ‘정직’ 하게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칠지만 정성이 담긴 손으로 그가 잡는 나무와 톱의 정직함과 순수함을 무기삼아, 그는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지금 이 시대에 당연시되고 있는 것들을 무색하게 한다. 「공간」은 목수 이정섭의 집 짓는 과정과 집을 대하는 태도를 건축가 이민아 소장과의 대담을 통해 들여다보았다. 그의 작업을 통해 목수와 건축가의 작업의 간극에서 발견 되는 새로운 가치와 그가 집에 담는 진정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권미주 기자>

집 짓는 일을 하게 되기까지

공간: 내촌목공소가 생긴 배경과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서양화를 전공했는데 어떠한 계기로 목수가 되어 집을 짓게 되었나?

이정섭: 일단 회화적 천재성이 없었다. 나는 미술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미술대학생이 됐다. 하지만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업을 봐도 감흥이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스스로 여러 가지 길을 생각하던 중 건축가가 아닌 내 큰아버지가 손재주가 좋다는 이유로 자기 집을 짓고, 동네의 다른 집들도 짓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 어떤 정보를 독점하는 비밀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미I대를 나와야 그림을 그리고 음대를 나와야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 것이다. 내 파자마 정도는 만들어 입고, 신발장 정도는 짜며, 내가 살 집을 짓는 것이 인간이 응당 누려야 할 재미인데 이 사회가 앗아갔다고 생각 했다. 직업을 선택해야 했고 그중 가장 끌리는 것이 목수였다. 처음에는 전통 건축 목수일을 배웠다. 문화재 공포를 베껴서 치수 따내는 일 을 했는데 그 본을 잘 뜬다며 나한테 뛰어난 목수라고 했다. 하지만 목수로 서 베끼고 재현하는 일이 별로 즐겁지 않았다. 전통 목조주택에서 불합리한 부분을 개조해 현대적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었고 그게 내게 맞는 포지 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된 일을 주지 않아 시도할 수 없 었고, 2×4 경량 목조주택의 가격으로 집을 지어달라는 일이 들어왔지만 역 시 재미가 없었다. 그때 가구를 보게 됐는데, 좋은 재료를 사용한 가구가 없어 보였다. 가구를 만들면 돈도 벌고 자리도 잡을 것 같았고, 내가 짓고 싶은 집도 지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가구에 매진하게 됐다 . 생각하는 것을 자유로이 만들어볼 수 있는 삶이 절실했다. 2002년 지금의 터인 홍천군 내촌면에 자리를 잡고 산중턱의 논을 메꿔 목공소(2004)와 내 집(살림집 1, 2003) 을 지었다. 집을 짓기 위한 목구조 제작 공장(2009)과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 (1929)과 마을 창고(1969)를 복원해 전시장(2007)으로 만드는 작업을 비롯해 성황당(2011)까지, 지금까지 가구 작업을 하며 집을 포함해 지은 건물이 14채다. 혼자서 시작했는데 식구도 많이 늘었다.

1. 내촌목공소 2. 살림집 1 3. 전시장 4. 게스트 하우스 5. 목재 구조 제작소 6. 살림집 2 7. 내촌목공소가 만든 집 1_B 2009 8. 내촌목공소가 만든 집 1_C 2009 9. 내촌목공소가 만든 집 1_D 2009 10. 내촌목공소가 만든 집 1_F 2009 11. 내촌목공소가 만든 집 1_G 2009

목수가 짓는 집

이민아: 건축의 모든 공정을 수공예적으로 완성한다는 것만으로 당신의 작업이 흥미로운 것은 아니다. 당신의 작업에서 읽히는 고유한 질과 건축설계가 업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천착하는 것 사이에는 공간이든, 형태든, 건축을 인식하는 방식에서든 큰 차이가 있다.

목수라는 용어 자체가 기능인을 칭하고, 목수가 집을 짓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데, 내촌목공소가 ‘목수가 짓는 집’을 얘기하는 것은 어떤 가치를 드러내고자 함인가? 목수로서의 당신의 신념이 궁금하다.

이정섭: 내촌목공소에서 목수는 지금처럼 도면을 주면 그대로 만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분업화되기 전의 목수로, 일의 전반을 아우르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그것이 내가 직함을 목수라고 쓰는 이유다. 옛날 방식으로 모두 손으로 두들겨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좋은 문고리와 못이 있으면 사서 쓸 생각으로 일본과 유럽을 뒤지기도 했는데, 마음에 드는 것을 찾을 수 없어 서 우리 손으로 만들고 있다.

이민아: 19세기 미술공예운동 시기의 사상가이자 아티스트였던 윌리엄 모리스¹가 ‘붉은 집’을 지으며 추구했던 가치들이 당신 얘기의 핵심과 흡사하 다. 미술공예운동은 회화와 조각 등의 순수예술이 아닌 생활예술의 중요성 을 설파한 운동이다. 모리스는 노동이 개인의 자유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창조적 행위여야 하고 무용한 노고에 의한 무용한 제품은 생산자 및 소비자를 비인간적으로 만든다고 했다. 중세 예술가는 제작의 즐거움 자체를 위해 일하는 직인이었고, 모리스가 추구한 것도 그러한 기술과 예술의 복원이었 다. 그는 필요한 만큼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의 가구들을 스스로 만들어 채웠다. 노동의 질과 재료에 대한 진실한 태도를 중요시하는 신념으로 일관한 모리스의 붉은 집과 당신의 집에는 놀라운 유사점이 있다. 현대 주택의 효시인 ‘붉은 집’ 의 사회적 영향력만큼 당신의 작업도 작가적 표현을 넘어 집을 짓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묻고 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1.윌리엄 모리스(1834~1896)는 현대 공예이론의 선구자로 시인과 건축가로 활동했으며, 영국의 독창적 사회주의자로 평가받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존 러스킨의 영향을 받아 19세기 후반 기계 생산에 의한 유사역사주의적인 저속하고 추악한 공예품의 범란에 반란하고 미술공예의 부흥을 주장했다. 당대 사상가들과 달리 자유로운 노동에 기초한 예술을 통해 아름답고 평등한 생활사회주의를 주장하며, ‘미술공예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모리스의 ‘붉은 집'(1859)은 근대건축의 출발점이자 미술공예운동의 요람으로, 설계자 필립 웨브와 상식, 배려, 전통의 가치를 공유하며 완성한, 아름다움과 실용주의가 조화의 극치를 이룬 집이다.

살림집 2, 전시장, 게스트 하우스 (왼쪽부터)

내촌목공소가 추구하는 집: 집으로의 회복

이민아: 집은 단순한 구축물이 아닌 거주 장소다. 집은 어떠해야 한다는 당신만의 치열하고 엄격한 경계가 있을 것 같다. 내촌목공소에서 추구하는 거주공간은 무엇인가?

이정섭: 인간이 응당 누려야 할 존엄을 지키기 위한 ‘품질의 집’이다. 집을 회복시키고자 한다.

이민아: 건축가들이 저질러놓은 어떤 것들에 대한 반성으로 회복을 의도하 고 있고, 회복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정섭: 내가 이야기하는 회복은 건축가들이 만들어온 문제가 아니라 산업화 이후 산업 자재의 대량 생산, 대량 공급 그리고 거대 규모의 공동 주거로 고착되고 있는 이 시대에서 나름대로 회복해보자는 의미다. 목수니까 좋은 목재를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직접 시공하면서 모든 재료를 내 몸으로 선택한다. 유해한 자재에는 내 눈과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민아: 유해한 자재로 짓는다고 해서 그 건축물이 유해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특히 집은 성능적 유용성보다 정신적 기능에 의해 장소화되기 때 문이다. 모든 과정에서 친환경적이고 인체 무해한 자재를 이용하기 위해서 는 비용이 발생한다. 원재료의 선택, 보관, 가공, 유통 과정을 위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지불 능력이 부족하다. 원목 바닥을 가질 수 없어서 나무 문양이 프린트된 합성재 바닥으로 만족한다. 나무에 대한 선호와 동경으로 나무 문양을 선택하는 욕망을 페이크라고 볼 수 없다. 자연 재료의 진정성에 감동하는 것은 안목이나 소양, 문화적 경험의 범위에 의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내 것으로 가지고 싶지만 우선순위에 두기 어려운 것이다. 나는 내촌목공소에서 만든 테이블을 가지고 싶지만 구입 할 생각은 없다. 구매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기준으로 본다면 온전 히 회복된 건강한 집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대단히 한정적일 것이다. 바닥재가 무늬목 장판인 집에서 거주하는 것이 문화적으로 열등하다고 할 수는 없다. 삶은 자체로 충분히 숭고하고 건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지은 집들을 들여다볼 때는 거주성보다 상품의 완결성에 관심을 두게 된다.

이정섭: 언제까지 그런 인식으로만 우리가 사는 집의 문제를 바라볼 것인 지 묻고 싶다. 건축가들이 건축주와 이 세상을 상대로 설득하고 가르치기 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민아: 건축가는 공공성에 대한 신념과 사회 미학을 지극히 독자적인 미 감으로 구현하고 실천한다. 사회를 가르치고 설득하는 것을 먼저 의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땅 위에 집을 지어놓은 순간부터 극명한 사건으로 실재하게 되면 그것이 일종의 텍스트가 되어 사회를 교육할 수는 있을 것이 다. 실제로 건축가의 마지막 결정은 건축주와의 집요한 타협과 설득의 결 과물이기도 하지만, 집을 지을 때 나를 가장 구속하는 질문은 이 집은 과연 어떻게 더 나은 삶을 가능케 하는가이다. 당신이 말하는 ‘집으로의 회복’에 대해 재료 선택 문제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다면,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 한 더욱 근본적인 답이 필요하다.

이정섭: 목수인 내가 집을 지으면서 정직한 재료를 선택하고 정밀하게 시 공하는 것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정성으로 기초를 다지는 내 작업이 진정한 집의 회복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건축물에 사용한 마감재와 시공된 것을 보며 놀랄 때가 많다. 대부분 건축가나 건축주, 그리고 예산 문제로 돌리지만 시공자의 책임이 결코 작지 않 다. 병든 자재를 사용하고 이를 부적절하게 적용한 경우를 많이 목격하게 된다. 디자인, 개념, 지식의 문제가 아닌 도덕의 문제다.

2010년 서울 한복판, 그것도 광화문에 무슨 일이 있었나. 우리나라의 장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석 달 말린 소나무 원목을 켜서 현판을 만들었다. 원목 상태로 석 달을 말렸다면 민가의 툇마루도 짤 수 없다. 나무를 만지는 사람이 그것을 몰랐을까. 나는 집을 짓는 사람 혹은 시공하는 사람의 도덕 성 문제라고 본다. 개념 회복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정직한 재료를 선택 하는 것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작업의 변화 과정

공간: 살림집 1(2003)을 시작으로 살림집 2(2011 )이르기까지 결과물들에 차이가 있어 보인다. 집 짓는 과정에서 단계별로 어떤 차이가 있었고,이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갔는지 궁금하다.

이정섭: 내촌목공소가 만든 집 2009(이하 세컨드하우스, 2010) 이전 집들은 전부 도면 없이 지었다. 도면을 그리지 못하는 것은 머리로 풀지 못해서다. 벽을 세워봐야 그 다음 작업에 감이 오고 구조도 엮을 수 있다. 내 집이 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건축주가 있는 집은 그럴 수 없다. 세컨드하우스 다섯 채는 기존에 해왔던 집 짓기와 전혀 다르게 진행됐다. 축주가 있었고 같이 작업한 건축가도 있어 처음으로 도면을 그리고 집을 지었다. 그러나 건축가와 함께 디자인한 설계도면을 가지고 실행에 옮겼을 때 실제 시공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일도 발생하고, 시공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작업이 며칠 동안 중단되기도 하는 등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전에는 생각한 적이 없던 이층집을 땅 생김새 때문에 지을 수밖에 없었는 데, 한옥 겹집의 구조를 나름 이해하고 있었고 미국산 소나무의 글루램을 구조재로 사용해 구조는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건식으로 난방도 풀었 지만 상하수도 배관, 욕실, 전기 등의 설비 위치는 풀기 힘들었다.

이민아: 세컨드하우스들은 다양한 재료의 적용과 구축 방식을 통해 실험 적으로 작업한 노력이 보인다. 집이 가구와 크게 다른 점은 집은 짓고 가구 는 제작한다는 것이다. 가구는 치울 수 있지만 집은 자리를 잡는 순간 주변 과 섬세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즉, 집은 장소를 수반한다. 당신이 살고 있는 살림집 1은 장소가 공간화된 듯 군살 없이 정직하고, 대상으로 마주하 기엔 숨 막히고 처연할 정도로 존재의 신중함이 있다. 반면 다섯 채의 세컨 드하우스들은 지었다기보다 제작해서 놓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두 작업에 서 당신의 집을 짓는 태도에 큰 차이가 있는 듯하다.

이정섭: 전에 사용해본 적 없는 돌, 콘크리트, 지붕재 등을 여기저기 시도해봤다. 전체적인 조율이 어려웠고 건축주와의 소통도 큰 과제라는 것을 알았다. 사실 나는 집을 잘 지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가구보다 100배 열심히 작업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 될 줄 알았다. 집도 가구처럼 조율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가구는 함량이 안 되면 남들이 보지 않을 때 태워버리면 된다. 하짐만 집은 부술 수도, 건축주가 있으니 도망갈 수도 없었다. 내 집은 자유로이 지었고 나는 무지했다. 그러나 세컨드하우스는 같이 작업한 건축가오와 건축주가 있는 작업으로 훨씬 제도권으로 들어와 있었고 그래서 긴장하고 경직되었던 것 같다. 건축주가 있 는 집은 건축주의 특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강박이 있기 때문에 순수미술에 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작업은 일기적 성향이 강한데, 내 일 기를 누군가 볼 것을 뻔히 알면서 일기를 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민아: 순수미술에 뒤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건축의 본성이다.

도면 없이 만드는 집

이민아: 건축가들에게는 평면이 일기에 가장 가깝다. 평면을 그리는 동안 상상력이 극대화되어 주체가 안 될 정도로 방대한 양을 적어놓게 된다. 그 러면서도 평면 스케치는 대단히 이지적인 사리판단을 요구한다. 건축은 직 관보다 논리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계산한다. 10mm 미만의 것도 우선 빠짐없이 도면에 그려 넣고 현장에서 조율한다. 그러나 당신의 살림집 1은 내가 학습한 범위를 벗어났고, 내가 모르는 다른 곳에 건축이라 는 분야가 이미 있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된 듯한 혼란마저 준 것이 사실이다. 결국 여태까지 집의 본질이라고 믿고 싶었던, 내가 집착했던 개념과 의미, 도면에 충실한 시공의 완결성, 기호에 의존한 조형미 등이 편협 하게 내성화된 가치일 수 있다는 반성을 했다.

반면 최근 내촌에 지은 집들은 리얼리즘적 치열성이 약화되었다. 경쾌한 아 이디어와 수려한 재료들의 향기가 독성처럼 강해 아름다운 실체들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붙잡지 못했다. 당신의 작업들이 서서히 변화를 겪고 있는 지점에 대한 집요한 추궁은 집은 무엇인가의 본질론에 근접한 관심이기 때문에 질문을 반복해본다.

2.존 러스킨(1819~1900)은 영국의 비평가이자 사회사상가다. 그는 “예술의 기초는 개인의 성실성과 도의에 있으며, 예술과 사회의 정신적 상호관계를 예술의 본질”로 파악했다. 저서 『건축의 일곱 등불』,『베니스의 돌』을 통해 전한 “예술은 인간이 창조적 노동의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월리엄 모리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정섭: 도면을 그려 계획하고 집을 지으면서 이런 방식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내 능력의 한계를 깨달았다. 건축이 업이 아닌 자의 작업이 어떻게 건축가들의 작업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작업들 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민아 소장이 내촌에 와서 놀란 것은 교육을 받지 않은 내가 풀어나가는 방식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0~30평형대 집을 굳이 건축가에게 맡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동선과 행동 특성을 누구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 받지 않은 자의 원초적인 미감이 갖는 힘도 매우 크기 때문에 거기서 비롯되는 신선함과 가능성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제도 교육은 그런 힘들로부터 멀어지 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생각들은 스스로에게 힘이 된다. 그러나 언젠가는 건축 가들처럼 계획하면서 집을 짓고 시행착오들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민아: 20~30평형대 집을 짓는 데는 전문 교육을 받은 건축가가 필요없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존 러스킨²은 중세의 모든 직인이 작업 전체를 조망하고 관장하는 통찰력으로 창조적 노동을 했던 반면, 현재의 분업화는 지식을 가둬두는 전문가들의 직능으로 구분되어 작업의 불균형을 가져온다고 했다. 건축설계와 시공은 업종이 구분되어 있다. 설계자는 시공의 한 계를 탓하고 시공자는 설계를 지적한다. 그러나 창조적인 노동의 역할은 설계를 되돌리기도 하고, 때로는 디자이너가 붙들고 놓지 못하는 공허한 개념들을 물질과 구축의 정직한 작전으로 땅에 내려놓는다. 당신의 살림 집 1은 설계와 시공이 구분되지 않았으나 집의 원형에 더 가까운 실체를 가지고 있다. 내촌목공소에서 지은 집들은 통념적인 건축 행위의 절차를 시원하게 뛰어넘고 어떤 경지에 도달해 있다.

도면이 무엇인가를 또 고민하게 한다. 도면을 그리는 것과 설계가 반드시 같은 의미는 아니다. 내촌목공소가 지은 집들은 도면으로는 점검도, 해명 도 되지 않는 디테일들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감각으로 극단적으로 조절 한 디테일과 방치된 디테일이 혼재되어 있다. 나로서는 그 두 가지 모두 하기 어렵다. 설계와 현장의 관계를 고민해본 적이 있나?

이정섭: 집의 디테일은 거의 현장에서 감각으로 완성했다. 문의 손잡이 디 자인 때문에 한두 달 생각한 적도 있다. 세컨드하우스를 함께 작업한 건축 가가 모형을 만들었고, 그때 모형 만드는 법을 배웠다. 앞으로는 집을 짓기 전에 모형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살림집 1

디자인: 이정섭 위치: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도관리 885 규모: 지상1층 건축면적: 84.48m2 건폐율: 36.77% 용적률: 36.77% 구조: 목조 외부마감: 흙미장 시공: 내촌목공소 창호: 알루미늄 시스템 외 전통격자창

장소와 집

이민아: 전통과 한옥에 대한 논의는 당신의 작업들을 이해하는 데 진부한 형식으로 작용할 것 같아 배제하고 있다. 그러나 내촌에는 이미 여러 채의 집이 들어섰다. 집들이 바꾸어놓는 지형에는 그것이 내 땅이어도 책임이 따르고 때론 설명이 필요하다. 내촌의 전체 경관에 대한 생각, 땅을 점유하는 방식과 내·외부 공간을 조직하는 계획 개념이 궁금하다. 당신의 살림집 1을 포함한 거의 모든 집이 윤곽을 먼저 결정하고 내향적으로 공간을 적절하게 나누어간 것으로 보인다. 구조가 공간을 만들기도 하고, 공간이 구조를 극복하 려 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한다.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왜곡이 보이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다. 공간을 조직했는가, 아니면 공간이 발생했는가? 가구 를 제작하는 일과 집을 짓는 일의 가장 큰 차이는 장소를 다룬다는 것이다. 배치 방식에서 장소와 공간, 대지와 집, 집과 집들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이정섭: 내가 짓는 집은 이 땅에 살았던 조상들의 주거문화와 구조에 터를 두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집들을 한옥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내가 짓는 집들은 기와지붕도 황토벽도 아니다. 다만 이 시대의 목수로서 내가 해석하는 한국 건축의 기본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기본이라 함은 이 땅의 자연 속에서 과하지 않은 규모와 공간이 우리들에게 주는 실존적인 감동일 것이다.

2003년에 내 집(살림집 1)을 지을 때는 내촌목공소가 이렇게 알려지고 내게 다섯 채의 집 주문이 한꺼번에 들어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가구를 만들어 팔고 여유가 생기면 집을 짓는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려던 막연한 포부를 가진 정도였다. 전혀 예상도 못했으니 모든 배치가 뒤죽박죽이. 지금은 후회막급이다. 옆에 지나가는 건축가라도 있었다면 이렇자는 않았을 것이다.

세컨드하우스의 경우 땅을 최대한 손대지 않고 앉힐 수 있는 자리에 배치했 다. 처음에는 땅이 평평해 보여서 건축주들에게 토목공사비를 평당 5만원씩 받았는데, 실제로는 절토량이 어마어마해 부득이하게 건축주들에게 토목공 사비를 추가로 5만원씩 더 받았다. 거기에 물관과 오수 처리 시설을 설치하니 예상을 뛰어넘는 금액이 나왔다. 하지만 건축주들에게 토목공사비를 더 요구할 수는 없어 타협해서 앉힌 자리다. 2011년에 완성한 살림집 2는 뒷산의 소나무 숲을 고려해 터를 잡았다. 집 한 채를 터와 어우러지게 할 수는 있 을지 모르지만, 여러 채의 배치는 지금의 나로서는 벅차다.

가구전시장

건축 그리고 건축가

공간: 현장에서 쌓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학습을 통해 습득하는 지식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건축을 공부할 생각이 있나?

이정섭: 건축 공부는 앞으로 집을 한 채 한 채 지으면서 배워나갈 생각이다. 집을 지으며 많이 배우고 있다. 도면을 어떻게 그리는지도 배우고 싶 다. 목재 구조와 목공일로 건축가들과 다양한 현장에서 함께 작업할 수 있 다면 큰 공부가 될 것 같다.

이민아: 당신이 생각하는 건축가란 어떤 사람인가?

이정섭: 건축에 대해 정규 교육을 받고 그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다. 어떤 함량의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자가 건축가가 아닌가 한다. 나는 어떤 측면에서 창조 행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건축물이든 좋은 가구든 좋은 그림이든, 모두 좋은 모사 같다. 과거에 있던 좋은 것에 대한 좋은 모사고 좋은 재배치 고 좋은 조합들인 것이다. 잘 조합하는 자가 좋은 건축가라고 생각한다.

이민아: 절대 미감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좋은가는 매우 개인적인 문제다. 왜 좋은가의 질문이 반드시 따른다.

내촌이라는 공동체 안에서의 내촌목공소

공간: 내촌에는 내촌목공소가 지은 여러 채의 집이 타운처럼 형성되어 있다. 인공적인 작업들을 하나씩 더해가고 있는 내촌목공소가 내촌이라는 지역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지 궁금하다.

이정섭: 내촌목공소는 내가 내촌면민임을 스스로 각인하려고 지은 이름이 다. 내촌은 마을 도서관도 없을 정도로 시골이고 문화가 없다. 농사로 먹고 살 수도 없고, FTA로 축산업이 무너진다면 경제 행위가 없는 동네가 될 것 이다. 그래서 한때 내촌을 위한 일들에 주력했다. 내촌목공소에서 내촌창 고라는 법인을 만들고 동네 건물을 매입해 문화행사도 하고, 내촌상회를 만들어 특산품도 개발하려고 했다. 볼거리를 만들기 위해 미술 전시도 1년에 서너 번씩 했고, 단호박 축제 때는 내촌목공소 고객 중 의사를 데려와 주민들을 위한 무료 건강검진도 실시했다.

간혹 동네 사람들이 자기 집 가구를 짜달라고 찾아오면 들어주지 않지만,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에 들어가는 상은 짜주고, 동네 성황당이 허물어지면 새로 지어준다. 공적인 선을 엄격히 구분해 마을 일을 돕고 있다. 내촌목공소 직원 중 내촌면 출신도 한 명 있다.

내촌목공소의 미래

이민아: 내촌목공소라는 조직 안에서 작업하면서 비즈니스를 병행하고 있는데, 내촌에 들어와 초기에 추구했던 정신과 달라진 것은 없나? 당신 개인 을 떠나 내촌목공소가 가지고 있는 전략은 무엇인가?

이정섭: 처음과 달라진 것은 없지만 다양한 경험과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전략은 없다. 비즈니스가 효율과 경제성을 추구한다면, 내촌목공소는 아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잘 만든 물건을 추구한다. 가구도 나무의 건조 기간까지 계산하면 한 점 제작에 몇 년의 작업 기간이 필요하다. 집도 슬로 시공 이다. 시공에만 1년 반 정도가 걸렸다. 정말 단순하게 정직한 재료, 그리고 잘 만드는 일이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이민아: 건축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의 작업을 보면서 ‘건축을 가르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했다. 당신의 집들을 보고 설명이 안 되는 설렘도 느꼈고 공연한 짜증도 생겼다. 질투였을 것이고, 그럼에도 신랄한 비판을 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앞으로 당신이 어떤 태도로 집을 지을지가 가장 큰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이정섭: 다음에 지을 집은 마을에 있는 내촌철물점 주인의 집과 아티스트의 작업실과 집이다. 내 기준에서 합리적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사실 건축 전문가가 나의 집 짓기를 보고 훌륭하다고 해도, 나는 그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재료 선택과 시공까지가 지금의 내 작업이고 내가 내세울 수 있는 품질이 며 태도다. 가구는 좀 한다는 자신도 있지만, 집 짓기는 긴장과 고민의 연속인데도 묘하게 재미있다.

공간: 마지막으로 내촌목공소가 앞으로 나아갈 작업 방향이 궁금하다.

이정섭: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잘 만드는 일에 치중할 것이다. 목공소로서 쌓은 목재 시공 경험과 정보를 건축가, 디자이너 등 전문가들과 나누거나 교환하는 일도 하고 싶다. 내가 목수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건 축물에서 부실한 목재를 사용한 부적절적한 시공이 가장 눈에 많이 띈다. 건축가가 할 일이 아주 많은 것 같다. 결국 최종 책임은 건축가가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안목부터 건축 재료 선정, 가구, 조명에 이 르기까지 모두 건축가가 맡아야 할 일이다. 건축가들이 든든한 방패가 되 어주어야 내촌목공소든 모래내대장간이든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가구전시장

디자인: 이정섭 위치: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도관리 885-3 규모: 지상2층 건축면적: 228.27m2 건폐율: 33.57% 용적률: 63.34% 구조: 조적조,목조 외부마감: 조적노출, 도장 시공: 내촌목공소 창호: 일반 알루미늄 시공기간: 2005.5~10

대담 후기

사실 이정섭 목수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것은 “당신은 건축가인가”였다. 시비도 걸어보고 잘난 척도 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질문의 핵심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다른 줄기를 잡고 있는 듯 한 번도 원하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부단히 고민과 성찰을 하고 있는 치열함의 끝을 대담 중에 역력히 보여줬다. 목수가 집을 지었다는 사실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것이 맞다. 하지만 이정섭의 작업은 건축가에게 충분히 특별했다. 내촌목공소를 처음 방문한 2년 전에 경험한 내 속의 혼란스러 움은 두고두고 내 작업의 현학과 교만함을 다스리고 있다. 그만큼 내촌목공소 작업의 진정성은 내게 잘 들키고, 때로 진정성에 위배되는 과잉 모습 또한 안타깝게도 내 게 참 잘 들킨다. 나는 이정섭 목수에게 건축가들끼리 겹겹이 지키는 자존심과 예절의 선을 두지 않는다. 칭찬도 많이 하고 비평도 혹독하게 한다. 부자들만 상대하는 비 즈니스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침없고 비열한 내 주사도 그는 잘 듣는다. 이정섭 목수가 잡는 나무와 톱의 순수함과 홍천 깊이 자리 잡은 내촌목공소의 자연주의를 목격 하고 매료되어 나는 꽤 세속화된 건축을 하는 건 아닌지 잠시 위축되었던 적이 있다. 내촌목공소는 그런 타인의 환상을 무기로 삼을 법도 한데, 실제로는 놀랍게도 가구를 만들고 집을 지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도 그를 비롯한 내촌목공소 사람들은 부서진 마을 성황당을 손봐주고, 섬마을 의 해녀 탈의소를 만들고, 폐교를 고치는 일에 기꺼이 즐거운 노동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정섭 목수가 몰가치하고 부도덕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고 줄곧 염려하는 그 반대의 것이 무엇인지에 주목하면, 그가 만든 격조 높은 집들의 내부를 들여다볼 때는 다 읽지 못했던 사실, 이정섭이 건축가라는 것이 더 정확히 보인다.

이정섭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99년부터 대목으로 한옥과 문화재 현장에서 일했다. 2002년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 내촌목공소를 설립해 활엽수 위주로 가구를 디자인 및 제작하고 있으며, 건축 전반의 목공일과 전통 목조 구조를 바탕으로 한 살림집도 짓고 있다. 또한 건축가, 디자이너 등 전문가들을 위하여 목재의 적절한 사용, 목재 구조의 시공과 적용에 관한 컨설 팅을 제공하고 있다.

이민아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베를라헤 건축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공간연구소, 민현식 건축연구소(기오헌 건축사사무소)를 거쳐 2004년 협동원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해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게-건축가 김수근 이야기』가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교문사 파주 사옥(2005), 자곡동 주택(2007), 부암동 주택(2008), 안양소년원(2009),전주 청소년 자립생활관 (2010),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대림국제관(2010), 춘천 청소년 자립생활관(2011)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게스트 하우스

디자인: 이정섭 위치: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도관리 885-4 규모: 지상1층 건축면적: 84.87m2 건폐율: 23.86% 용적률: 23.86% 구조: 조적조,목조 외부마감: 조적노출, 목재사이딩 내부마감: 도장 시공: 내촌목공소 창호: 알루미늄 시스템 시공기간: 2007.9~11

디자인: 이정섭 위치: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도관리 883 규모: 지상2층 건축면적: 137.74m2 건폐율: 32.59% 용적률: 59.89% 구조: 조적조,목조 외부마감: 변색조적, 목재사이딩 내부마감: 도장 시공: 내촌목공소 창호: 알루미늄 시스템 시공기간: 2010.6~11

본 페이지는 월간「공간」2011년 4월호(통권 521호)의 기획 기사 ‘정직한 집 짓기의 회복’의 글과 이미지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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