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zzar 가구 만드는 남자, 집 짓는 남자 with Piet Hein Eek, 2013/01

가구 만드는 남자, 집 짓는 남자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피트 헤인 에이크와 한국의 이정섭 목수가 거칠어진 두 손을 각자의 테이블에 낙관 찍듯 올려두었다. 이 자리는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즐거움과 고뇌를 아는 목수의 만남이자, 전혀 다른 개념의 디자인을 꿈꾸며 실천하는 몽상가들이 서로를 향해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시간이었다.

피트 헤인 에이크가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모더니즘을 가장 잘 이해한 디자이너이자 제품을 직접 제작하고 유통하는 거의 유일한 목수라는 건 분명하다. 뒷마당에 버려진 폐목재의 가치를 발견, 이를 활용해 만든 스크랩우드 가구들은 피트 헤인 에이크의 트레이드마크로 각인되며 유라시아 대륙 건너 한국에서도 사랑 받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단순히 환경보호 차원에서 리사이클링 제품을 만든다는 사실이 아니다. 이를테면 그가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는 영역은 모더니즘에 대한 철학, 요즘 디자인에 대한 의견, 삶의 방향까지 상상 이상으로 광활한데, 그 광활한 영역은 용기 있게 탐험(탐색이 아니라)한 덕분에 전혀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버려진 목재로도 이렇게 실용적이고 미적으로도 가치 있고 비싼 가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며.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꿈을 담은 공장인 ‘뉴 빌딩’에서 ‘만든다’와 ‘사용한다’의 엄격한 경계를 허물고 생산과 소비 자체를 하나의 관계로 디자인한다. 출처와 공정을 알 수 없는 기성품이 전부인 줄 아는 요즘, 무언가를 만드는 풍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고자 작업실을 만들었고,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레스토랑을 만들었다. 피트 헤인 에이크가 그렇게 만들어낸 일상의 물건들은 누군가의 공간에, 그 모습으로 존재했을 것 같은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했다. 그건 디자이너의 오리지널리티이기도 하지만, 그걸 쓰는 사람도 자신만큼이나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한편 이정섭 목수와는 4년 반 전 내촌목공소에서 만난 적이 있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며 데이비드 헨리 소로가 쓴 글은 내촌에 들어가서 사는 이정섭의 버전으로 바꾸어도 완벽했다고 상상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몇 가지가 함께 기억난다. 그가 만든 가구는 조지 나카시마의 기구에 패기를 더한 듯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었는데, 정갈하고도 고급스러운 가구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 오르면서 말문이 박혔다. 그는 우리 일행을 검박한 한옥의 부엌으로 데려가서는 생미역무침과 볶음김치로 상을 차려주었고, 적금을 깨어 가구를 사고 싶어하는 안목 좋은 어느 젊은 부부 이야기를 했으며, 인터뷰는 뒷전이고 의젓한 기구를 연신 쓰다듬는 내게 대출을 받으라 권했고, 돌아오는 길에 난 언젠가 가구부티 집까지 세트로 의뢰하리라 마음먹었다. 다시 한빈 내촌에 들르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한 채난, 그에 대한 소식만 간간이 들었다. 재벌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꼭 몇 개 씩 구입한다는 소문도, 큰아버지가 손수 지으신 집을 좋아한다더니 드디어 스스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오랜만에 만난 그는 그때 나의 ‘요원한 바람’을 지금 누군가의 ‘내일’로 실현시키기 위해 평창동에서 치열하게 집을 짓고 있었다. 고지식할 정도로 까다롭게 나무를 관리하고, 엄격하게 나무의 비례를 고민하며, 무언가를 직접 만들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인인지 알고, 이 것이 자신이 사회에 할 수 있는 유의미한 일이라는 걸 아는 남자가 만드는 집은 아마 집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을 갖춘 집일 터다.

한국을 찾은 피트 헤인 에이크가 서로의 작업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가장 잘 맞는 상대는 이정섭 목수였다. 이날 피트 헤인 에이크는 이정섭이 만드는 집을 흥미롭게 둘러봤다. ‘오래된 것’을 존중하는 마음은 같되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는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손마디가 거친 목수이자 장인이라 는 것, 물질과 재료에 대해 탐구하며 사유를 물건에 담아낸다는 것, 디자인을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의 문제로 통찰한다는 것. 세상의 모든 이들이 ‘새로운 것’읍 만드는 데 전념하지만, 끝까지 ‘당연한 것’을 만들 것만 같은 두 남자가 마주 앉은 모습은 자못 감동스러운 데가 있었다.

BAZAAR(이하 B): 오늘이 첫 만남이지만 서로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으며, 직접 만나보니 어떤지 궁금하다.

피트 헤인 에이크(이하 P): 이 건물은 정말이지 놀랍다.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이 완전히 다다. 스케일도 너무 커서 인상적이고(이정섭 목수는 이 집을 지으면서 스케일 큰 목조 건물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맨 위층과 지붕은 전통적인 한옥 방식이고 아래층은 현대적인 공간인데, 내가 작업하는 방식과 비슷해서인지 굉장히 편안하다. 요즘 난 작업실에서 직접 가구를 만드는 일보다 다른 것에 더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라 좀 슬프기도 한데, 이렇게 직접 집을 설계하고 짓는 일까지 하는 걸 보니 자극이 된다. 프랑스에 별장을 만들고 있는데, 나도 계속 그곳을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정섭(이하 L): 난 집에서 파트 헤인 에이크가 만든 컵과 쟁반을 직접 사용하고 있다. 사실 무겁고 불편하다. 하지만 쓸 때마다 늘 놀라곤 한다. 우리가 알던 디자인, 늘 보던 컵인데 두께감을 주어 새로운 물건을 탁 만들어버린 것 아닌가. 두께감만으로 전혀 다른 디자인을 만들어버렸으니까. 사실 작가들은 일상에서 텐션이 있는 걸 쓰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 컵이 다소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집하는 거고 그런 면에서 피트는 디자인을 넘어서는, 어떤 장르를 만든 사람인 것 같다. 정말 머리가 좋은 분 같고.(웃음)

P: 고맙다.(웃음) 사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이 컵은 베트남에서 공정무역을 진행하며 만든 거다. 도예가인 내 아내는 굉장히 얇은 도자기를 선호했지만 그 공장의 생산 기술이 욕심 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조금만 얕게 해도 결함이 생겨 아내는 이렇게 두껍게 할 수밖에 없다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난 0[내에게 거꾸로 제안했다. 얇게 하려고만 노력하지 말고 아예 두껍게 만드는 건 어떠냐. 상황을 역이용해서 만들어낸 컵이다.

B: 피트 헤인 에이크는 <바자>인터뷰를 통해 디자이너는 ‘시간을 해석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기에 오래된 것’에 이렇게 애착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피트 헤인 에이크가 폐목재를 활용해 스크랩우드를 만든다면 이정섭 목수는 전통을 체화하고 재해석해 현대적인 공간에 맞는 가구를 만들어냈다. ‘오래된 것’을 풀어내는 방식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게다가 이정섭 목수는 오는 17일부터 호림미술관에서 개인전를 열지 않나.

L: 이번 전시는 성격이 좀 다르다. 디자이너로서 내가 큰 자질이 없다는 건 내가 잘 알고 있다. 집이든 가구든 요즘 시대에 한국성이 구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 특히 이번에는 전통 가구 중 좋은 것들이 많은데 그것을 현대에 맞게 해석해보는 작업으로 주제를 잡은 거다. 약간 물질과 정신이 섞여 있다고나 할까. 예를 들어 아주 비례가 좋은 사방탁자인데 두 단만 더 있으면 훨씬 현대적일 것 같다, 사방탁자는 두께감이 가장 이상적이겠다 등의 생각을 실현하는 직업이다. 특히 옆으로 수납할 수 있는 전통 장, 고비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생각할 고자에 비축할 비자를 쓰더라. 재미있지 않나? 고비는 키를 좀 키웠고, 3층 장의 장식적인 요소는 모두 배제하는 등 비례 형태를 살짝 바꾸고 현대 공간에 맞게끔 만들었다.

B: 이번 전시에서는 블랙우드라는 새로운 소재의 나무틀 선보인다고 들었다. 내촌목공소에 갔을 때 반도체 공장에서 쓰는 기계로 온도와 습도를 맞추면서 나무를 보관하는 걸 봤다. 블랙우드란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찾은 소재인가?

L: 오스트리아에서 탄화한 나무다. 그 나무의 연대를 측정하면 300년 넘게 나온다. 우리나라 에서 가장 오래된 목가구라 해봤자 17세기 조선 때의 것이고 그전의 가구는 아예 사라져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3백년이 좀 넘었다는 이야기인데, 억지로 고화시킨 나무이긴 하지만 블랙우드로 만든 가구가 우리나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가구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오래 됐다는 게 흥미로웠다. 전통의 좋은 점을 계승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내게, 블랙우드는 현대가 요구하는 완결성을 그 자체로 가자고 있어서 해석이라는 주제와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숯 전 단계이다 보니 색깔에서도 묵은 맛과 묘한 질감이 난다. 아마도 블랙우드로 만들 수 있는 가구들이 좀 더 많아질 것 같다. 장식장에 문을 달 수 도 있겠고 키친 테이블도 만들 수 있겠고.

P: 유럽에서는 앤티크 가구를 생산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그 가차를 더 이상 즐기지 않게 됐다. 하지만 난 모던한 혹은 모던하기만 한 가구들은 별로다. 네덜란드나 유럽만의 전통 방식이 사라졌다고나 할까. 그래서 개인적으로 옛 가구들을 수집하면서 전시하고 이게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지에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도 하고 있다. 알고 보면 내 작품 성향도 세계 대전 전후에 있었던 산업화로 생긴 모더니즘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때 새로운 기계나 소재들이 공급되면서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닌 기존의 것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은 것이 다름 아닌 모더니즘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자금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적 공황이 오고 있지만 우린 여전히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고 있지 않나. 앞으로는 재료나 에너지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B: 졸업 작품을 만들 때 뒷마당에 버려진 목재들을 보고 만든 것이 스크랩우드 시리즈다. 그 것이 당신을 상징하는 작품이 된 건 이런 디자인 철학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

P: 그렇다. 난 작업을 할 때 디자인을 염두에 두고 재료를 찾는 게 아니라 재료를 먼저 선택하고 그 재료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업한다. 재료를 좀 더 존중하고 재료를 사용하는 최적화된 방법을 찾는 거다. 예를 들어 ‘99.12%’라는 작품이 있다. 재료의 99.12%를 사용한다는 의미인데, 나머지 0.88%는 볼트를 고정하는 구멍 등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로스율이니 실제적으로는 거의 본 재료를 100% 사용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원재료를 존중하고 낭비나 손실 없이 최대한 최적화된 활용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최고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L: 이런 이야기를 하는 디자이너는 처음이다. 디자이너든 건축가든 다들 답답한 소리만 하는 데. 아. 속이 다 시원하다.

P: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걸 배우려고 한다.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것을 대상으로 하니까. 하지만 난 지속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옛날 가구나 작품들이 완성도 있는 이유는 한 디자이너가 오랜 시간 동안 같은 디자인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며 내놓은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공장과 이정섭 목수의 작업 스타일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L: 전통은 형태가 아닌 정신성의 문제인 것 같다. 이를테면 장식적인 것이 전통인 서양은 물론 가까운 일본과 비교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것이 휠씬 모던하고 좋아 보인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던 것 같다. 가장 못살고, 가장 고생했고, 5백 년간 가장 무능한 정권이었다. 그러니 어떤 장식성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었을 거다. 호의호식하는 몇 명 이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구에 서양처럼 조각 하나 깍아 넣을 여유가 없었던 거지. 그게 누적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 현대에서 바라볼 때 굉장히 모던하다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피와 땀이 어린 결과물이 된 거다.

P: 이정섭 목수의 가구에서는 재료를 사용하는 비율이나 한국적 가치가 아주 강하게 느껴진다. 유럽도 비슷한 상황이 있다. 과거 굉장히 화려했던 럭셔리 앤티크 가구보다도 점점 농부들이 사용했던, 같은 이유로 단순할 수밖에 없었던 가구들이 최근에는 더욱 각광을 받고 높은 가치를 평가 받고 있다.

L: 피트 헤인 에이크 하면 나무 작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 아크릴과 철로 만든 작품이 더 좋다. 재료에 맞는 디자인이 모더니즘의 정신일 수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디자인이 별거인 줄 알고 있다. 언젠가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 만든 볼(Bowl)을 봤는데, 그 때 이미 디자인은 끝났더라. 결국 그 때의 디자인이 돌고 도는 거 아닐까? 난 디자이너들의 역할은 모양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개념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B: 두 분의 손을 보니 매우 인상적이다. 난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손으로 만들며 산다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본인이 쓸 물건을 직접 만들고 산다는 것이 위대해 보이고, 삶을 일군다는 느낌과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인 것 같다.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나?

P: 자신이 생각하는 무언가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건 선택 받은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기도 하다. 특히 나의 일상에서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사람들이 실제 뭔가를 만든다는 건 특별한 일이다. 우리 직업이 가구와 도자기 등을 만드는 것이지만. 한편 행정적인 일을 하는 스태프들까지도 주문서가 도착하면 어떤 나무가 이렇게 만들어지겠구나 함께 상상하고 공유하며 일한다.

L: 가구, 음식, 옷, 집, 그림, 음악 모두, 이런 요소들은 원래 인간이 누리고 살아야 하는 것들이었다. 어쨌든 존엄하게 살려면. 사회가 분업화되고 전문화되면서 돈을 주고 그걸 취하는 형식이 된 거다. 음식 사 먹어야 하고, 공연 봐야 하고, 미술관 가서 그림 구경해야 하고. 그래서 예술의 사회적 가능이 필요해져 버렸다. 그 동안 우린 인간의 총체성을 잃고 살았는데, 이젠 그런 것들을 회복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얼마 전 목공방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일종의 본능인 것 같다.

B: 그런 생각으로 손으로 직접 만든 이 물건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쓰이기를 바라나? 어떤 쓰임새가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나?

P: 내가 자금 생산하는 작품은 어찌 보면 굉장히 비싼 명품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을 스스로 의심하고 의문을 품은 시기가 있었는데, 결국 난사람들이 나의 작품을 가지고 있을 때 행복했으면 한다는 아주 심플한 결론을 내렸다. 내가 영위하고 있는 삶의 방식이나 소비에 대한 생각 등 새로운 시각을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길 바란다.

L: 우리 가구도 값이 비싸긴 하지만, 난 사람들이 비싼 가구를 좀 샀으면 좋겠다. 우리가 짓는 집도 중 작은 집의 경우는 벤츠 S클래스보다 조금 더 비싼 정도다. 내가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건강한 집을 짓는데 그 정도 투자는 해야 하지 않을까? 옛날에는 가구를 공들여 만들어 썼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우리 가족이 쓰는 가구를 들이는 데도 경제 원리를 적용한다. 속된 말로 비싼 데서 술 한잔 먹는 값일 텐데, 그 돈을 아까는 소비행태가 난 몹시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설득을 해서라도 팔고 싶다. 보여지는 것에만 돈을 들이지 말고 이런 것에 더욱 신경 쓰라고. 평생 쓸 수 있고, 물려줄 수도 있으며, 이 가구 옆에서, 집에서 아이들이 커나간다고.

P: 약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새로운 것만 좇다 더 나은 물건을 만드는 걸 등한시하던 시기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그때 만들어졌던 흉물스러운 건물들을 다 부수고 처음부터 제대로 새로 짓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건축이나 예술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것. 음식, 농업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B: 가구란 반드시 어떤 공간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태생적인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집은 물론이고 가구,조명,그릇을 만든다는 건 삶의 영역을 만든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

P: 모양이나 형태, 기술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그 공간을 방문 했을 때, 피트의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기보다는 그곳이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래야 했던 것처럼, 마치 그런 인테리어 작품이 자생적으로 자라난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도록 최대한 잠재력을 끌어내고 싶다. 우리가 일하는 ‘뉴 빌딩’을 디자인할 때에도 건물 외관을 제외한 거의 모든 걸 다 고쳤지만, 마치 그곳이 원래 그랬던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L: 공간 디자인은 제품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요소가 많을 뿐이고, 그 많은 요소들을 더 많이 생각해야 하는 것뿐이다. 중요한 건 개념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여 들어 창호 하나를 만들 때에도 사무실에서 개념적으로 설계하는 게 아니라 건축 현장에서 뼈대를 짜고 실제 그곳에 여러 번 서보면서 직접 느끼고 사이즈와 위치를 정한다. 공간을 만든다는 건 그 곳에서의 경험을 존중하고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B: 지금 서로가 만든 의자에 앉아 있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났는데, 느낌이 어떤가? (둘 다 몸을 구부려 의자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P: 내 키에 비해 의자가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편한 것만 봐도 기본에 충실하게, 영리하게 잘 만든 의자다.

L: 피트 헤인 에이크가 만든 가구 중에서 재료에 대한 모던 정신이 가장 잘 느껴지는 것이 의자인데, 이 두께의 나무로 튼튼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디자인을 잘 선택한 것 같다.

P: 맞다. 그렇게 최적화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숨어 있는데, 예를 들어 등받이 부분 옆쪽에 두 개의 합판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여길 보면 쐐기 형태로 맞물리게 되어 있다. 이 디테일이 없으면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봤자 금방 부서져버린다. 그게 진짜와 가짜와의 차이다.

(왼쪽부터) 1 전통 서랍장을 변형한 작품 STORAGE 6 2 탄화목인 블랙우드 3 옛 문서를 옆으로 넣어 보관하던 고비를 재해석, 키를 높인 작품 4 선반의 구조와 비율을 현대적으로 보완한 작품 ELEMENT 3

(왼쪽부터) 1 유리와 철의 느낌을 제대로 살린 캐비넷 2 폐목을 조합해 만든 컬러풀한 사이드보드 3 나무와 유리를 이용한 실용적인 장식장 4 피트 헤인 에이크의 가구로 꾸며진 공간 5 암체어

조금 긴 추신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피트 헤인 에이크는 이정섭 목수가 지은 함양 한옥에서 하룻밤 묵기 위해 내려갔다. 그리고 이정섭은 집을 짓기 위해 다시 평창동 꼭대기로 올라갔다. 평창동 아래에서 산을 올려다봤다. 그가 짓고 있는 거대한 목조 건물이 마치 산의 일부인 것처럼 풍경과 녹아 들며 고급 주택들이 저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동네 특유의 느낌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집을 지은 지는 3년, 그 동안 10채 가까운 집을 완성했으니 참으로 부지런한 목수다. 그는 그저 “건강하고 보기 싫지 않은 집”을 짓고 싶을 따름이라고 했지만, 난 이 무명의 건축가가 꽤 까다로운 미의식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짓고 싶은 스타일의 집이요? ‘선입견 없음’이라는 건 창의적인 사람에게 기장 중요한 것입니다. 르 코르뷔제가 당시 성당의 필수요건이었던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창을 뚫어 롱샹 성당을 만들었던 것도 ‘선입견 없음’의 결과물이죠. 안도 다다오는 그걸 더 첨예하게 십자가 모양으로 뚫어 ‘빛의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난 안도의 ‘빛의 교회’가 여전히 매우 좋아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이정섭이야말로 이쩌면 ‘선입견 없음’의 창조적인 삶을 사는 남자다. 이렇게 부지런히 전통 가구를 재해석하고 한옥이 어떻게 변화 발전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목수는 이제껏 없었으니까. 그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가구와 기대하지 못했던 건강한 집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이미테이션(가짜)이 오리지널(진짜)이 되어버린 시대에서 진짜보다 더 진짜를 증명하기 위해서 뚜벅이처럼 걷고 있다.

 이정섭은 다음 날 집 짓기의 기초공사를 하기 위해 내촌에 간다고 했다. 15가구 정도가 살 수 있는 6채의 집을 지을 예정인데, 동네 길과 담장, 그리하여 집들의 관계까지 만드는 일종의 마을 프로젝트라고 한다. 그는 또 다시 꽁꽁 언 맨 땅을 포크레인으로 파는 작업부터 시작할 것이고, 집을 짓는 과정에서 만나는 수 많은 난관을 정면 독파하느라 밤잠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의 손은 더욱 거칠어지고, 손톱은 더욱 새까매지겠지만, 오로지 좋은 집을 만들 거라는 집념으로 온 몸의 장기를 채워버린 듯한 이 목수가 이만큼 치열하게 마음을 쓴 집에 산다는 건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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