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ine 목수, 이정섭의 지극한 즐거움, 2013/03

목수, 이정섭의 지극한 즐거움

아침에 벌떡 일어나고 싶을 만큼 가슴 뛰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목수, 이정섭. 지난 한 해 그는 강원도 홍천이 아닌 평창동에 머물렀는데, 그가 지나간 자리엔 또 이런 근사한 집이 남겨진다. 집 잘 짓기로 소문 자자한 목수, 이정섭을 소개한다.

‘그의 인생(His life)’이라는 칼럼명을 생각하면 종종 가슴이 답답해진다.한 번의 인터뷰로 한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게다가 이 칼럼에는 대개 한가지 일에 몰두해 어떤 이즘(ism)을 만들어낸 이들이 등장한다. 엄살을 떠는 것은 이번 인터뷰 대상이 목수 이정섭이어서 특히 그렇다. 사실, 이정섭은 여러 번 만났다. 7년 전, 첫 인터뷰를 시작으로 그간 마주한 것만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모를 사람이다. 이정섭은 말을 심하게 아낀다. 자신의 작업에 대해 줄줄 말하는 달변가는 아니어도 대개의 인터뷰이는 자신이 구축한 명확한 세계 안에 살고, 그에 어울리는 언어도 잘 구사하는 편이다. 세상의 상찬과는 달리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가 지나친 순결주의자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 이유를 아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번 평창동 취재 후 이어진 술자리에서 들릴 듯 말 듯 그가 내뱉은 말. “사회가 건강해야 하는데, 소위 컨셉추얼한 작업을 한다는 사람들은 사회를 ‘불’건강하게 만들어요. 주장하지 않는 사람들의 작업을 가치 없게 만드는 거거든요.” 세상이 칭송하는 건축물 곁에는 건축가의 이름이 따르지만 실제로 짓는 사람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건축물을 지을 때 디자인부터 시공까지 총괄하는 이정섭은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 시작부터 끝을 모두 책임지는 사람인데도 어떤 행세도 하지 않는다. 그냥 ‘목수’이고, 그래서 그는 ‘이목수’라 불린다. 말 대신 행동으로 ‘말’하는 그를 오랫동안, 유심히 지켜본게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번 칼럼은 쓸 수 없었을 테니까.

에디터라는 직업 덕분에 왜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만 이정섭 같은, 심지어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이정섭은 아침 9시부터 일을 시작해 저녁 6시쯤에야 끝낸다. 9시쯤에는 술 한잔을 하고 10시 반이나 11시쯤 잠든다. 주말에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손님이 왔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하루 일과표가 좀처럼 깨지는 일이 없다. 그가 하는 일은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드는 옛날 목수가 했던 일이다. 그의 일이나 하루 일과표를 보면 딱 그렇다. 마우스 클릭 한 번이면 세상 저 편의 가구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고. 두세 달이면 근사한 집을 뚝딱 지을 수 있는 체계화된 시스템 속에서 그는 옛날 목수의 일상을 꿋꿋하게 지켜간다. 세상과 단절하고 산으로 들어간다면 누가 못할까마는, 이정섭은 혼자서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드는 게 아니다. 그가 ‘난’ 사람인 건 LTE 속도가 아니면 못 견디는 빠른 세상에 길들여진 세상 사람들이 그를 아주 많이, 원한다는 것이다. 현 재 평창동에 짓고 있는프로젝트가끝나면 그의 앞에 15개의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어쩌다 ‘인기 좋은’목수가 되었을까.

서양학과를 졸업했는데 그림에 천재성이 없다고 생각해 일찌 감치 그만뒀다. 그림은, 예술은 꾸준히 한다고, 머리를 잘 굴린다고 되는 영역이 아닌 것을 알았으니까. 먹고살아야 하니 다른 방편이 필요했고, 그러다 우연히 태백에 전통 가옥을 짓는 법을 교육하는 곳을 알게 되어 그곳에서 대목일을 배웠다. 옛날 목수는 대목과 소목을 둘 다 하는 사람이 었는데 둘의 역할은 기와를 중심으로 나누면 이해하기가 쉽다. 기와를 올리기 전 집의 구조를 만드는사람들이 대목이고(기와 올리는 일은 와공들이 한다), 소목은 문과 창문, 가구를 짜 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대목 일을 맡아 한옥과 문화재 시공 현장을 돌아다니며 나무를 다루는 데 꽤 소질 있다는소리를 듣던 이정섭이 그 일을 그만두고 내촌목공소를 차린 이유는 “한옥을 반복적으로 재현하는 일이 재미없어져서”다. 2004년 이후 지금까지 그의 전진 기지가 되고 있는 ‘내촌목공소’는 강원도 흥천군 내촌면 도관리 885번지 산골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이야 그에게 집 짓기를 의뢰한 사람들 덕에 별장 10여 채가 들어서 누구나 탐낼 만한 장소가 되었지만, 처음엔 나무만 무성하던 야산이었다. 그곳까지 들어간 이유는 가난한 목수로서 선택 폭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촌에 들어와 처음 한 일은 자신이 살 집을 짓는 것이었고, 2년 후 그는 ‘내촌목공소’란 간판을 내 걸었다. 당장 집 짓는 일을 하기에는 당시엔 능력이 부족하다 생각했고, 살림집을 짓고 남은 나무로 자신이 쓸 가구를 만들 요량이었다는 것이 ‘내촌목공소 가구’의 시작이었다.

7년 전, 그를 만나기 위해 홍천으로 갔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정섭은 내촌목공소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가구로 그해 ‘서울리빙페어’ 에서 눈에 띄는 작품상을 수상했고, 어느새 컬렉터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름이 되어 있었다. 당신의 가구는 어떤 가구냐는 질문에 그는 “좋은 재료로 잘 만든 가구”라 답했지만, 그땐 그 문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나 ‘좋은’ 재료를 쓰고 싶어 하고 ‘잘’ 만들고 싶어 하는데 그게 무슨 대답인가 싶었다. ‘콘셉트’나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질문하면 그는 질색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해가 간다. 언젠가부터 가구 앞에 디자인이라는 말만 붙이면 ‘디자인 가구’가 되어 두 배의 값을 챙기는 요지경 풍경을 예상했던 것 같다. 이정섭의 가구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정확히 어떻게 설명할지 몰라도 감탄하게 되는데 그건 디자인이라는 본래의 뜻, ‘용도에 잘 맞고 가장 미적인 형태를 지니도록 계획 설계하는 것’이 그의 작업 방식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별 게 아닌게, 그렇게 만드는 사람이 거의 없는 세상이니까 그가 돋보이는 것뿐이다. 그의 작품은 조선 시대 가구의 미감을 닮은 가구로 수식되곤 하는데 이정섭 또한 절대적인 비례미를 갖춘 가구로 사방탁자를 언급한 적이 있다. 지금처럼 풍요롭지 않던 시절, 없는 살림에 만든 가구들은 정말 필요해서 만들 었을거다. 재료도 귀하고, 작업 자체도 드물었으니 정성 들여 완성 했을 터. 200년이 지나도 근사할 수밖에 없는 건 사실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이정섭의 가구와 조선 시대 가구가 닮은 점은 모양도 질감도 아닌, 작업 방식이다. 가구를 만들든, 집을 만들든 무엇이든 같다. 원초적인 아름다음이 무엇일까, 기본적인 형태의 ‘최선의 상태’가 무엇일까를 머릿속으로 쉴 새 없이 생각하는 그는 그걸 또 쉴 새 없이 제 손으로 만들어본다. 어떤 때는 형편없고, 어떤 때는 좀 봐줄 만한 것 같다. “매번 하지만 그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지만 본인 작업의 기승전결을 유려하게 설명하는 사람보다 투박한 그의 언어가 정직해서 참 좋다.

요즘 그는 가구보다 건축 작업에 푹 빠져 있다. 가구도 만들지만 건축은 가구 만들기보다 백배는 즐거운 일이다. “가구는 작고, 건축은 크다”가 그의 대답. 크니까 그만큼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고, 해결해야할 문제가많으니 그는 즐겁다. 가령 테이블의 경우, 재료가 서로 맞부딪히는 자리가 서너 개라면 건축은 수천 개다. 방법을 찾는 과정 역시 가구에 비해 훨씬 많고 복잡한 게 건축물. 이정섭은 내 촌목공소 목수들과 함께 대지 다지기 작업부터 시작해 건축물을 완공하고, 그 공간에 맞는 가구며 문고리 하나까지 모두 직접 만든다. 그의 작업을 두고 누구는 르네상스식 접근법이라 표현하는데, 그 런 방법론을 다 떠나 그가 이런 올인원 작업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그가 보기 에 모두가 성에 안 차서 그렇다. 3년 전, 강원도 홍천에 별장 취재를 갔다가 본 LED 램프가 있었는데 검박한 형태의 기다란 램프가 참 예뻐 출처를 물었더니 그가 만든 것이었다. 마트에서 쉽게 살수 있는 기성품의 경우 회로를 비롯한 모든 것이 구성되어 있지만, 이 램프는 손수 회로까지 연결해야 해서 이 작은 LED 조명 하나를 만드는 데 몇 달(!)이 걸렸다고. 그 소요 시간도 놀라웠지만 정작 놀란건 그의 말에서 굉장한 만족스러움이 느껴졌다는 거다. 이정섭은 공부하는 목수이며,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목수다. 건축물에서 사용하는 전기에너지 사용량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기술을 구현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LED 램프처럼 아예 통째로 만들어버리는 수 밖에 없다. 특히 그가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목재를 보면, 전통 한옥을 짓는 이들과의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전통 한옥의 천장 구조와 형태는 같지만, 목조는 엔지니어드 우드(Engineered wood)를 사용한다. 그가 생각는 품질 기준에 맞는 게 없으면 목재 또한 새로 만든다. 가령, 이번 평창동 작업에서 거주 공간에 사용한 마루의 경우, 모두 내촌목공소에서 디자인·제작·시공한 원목 마루다. 보통 한옥과 문화재를 지을 때는 나무의 건조율이 20%, 25%에 지나지 않지만 이 나무는 인천의 작은공장에서 12%까지 건조하는 데 성공시켰다. 이 정도가 되면 물성 변화가 거의 없는 건축 소재가 되어, 물기 에 항상 노출되는 주방 싱크대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이정섭은 흥천에 네 개의 세컨드 하우스 빌리지를 짓는다. 작은 마을 의 개념이라 ‘길’부터 다시 만들고 건축물을 앉히는 방식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나는 이정섭을 부지런한 천재라 생각하는데, 내촌목공소 김민식 고문의 말에 따르면, 이정섭은 일년 365일 중 363일을 일하는 사람이다. 삶의 낙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인간이 살 권리는 있어도 행복할 권리는 없는 것 같다”라 답했지만, 사실 그는 지극히 즐겁다. 그리고 그 원천은 집 짓는 행위의 모든 것이다.

에디터 김만나

포토그래퍼 조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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