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mon tree 겉치레 없는 나무집, 2013/05

겉치레 없는나무집

강원도 내촌, 백우산 기슭을 따라 층층이 자리 잡은 나무집

강원도 내촌,백우산 기슭을 따라 층층이 자리 잡은 나무집 다섯 채. ‘정직한 집 짓기의 회복’으로 주목받은, 내촌목공소가 만든 집들이 모여 있는 곳. 치과의사 조문건 원장은 지난 1년, 서울과 내촌의 집을 오가며 정직 한 집에 거주하는 즐거움을 오롯이 만끽했다 말한다.

오르막길에서 제일 처음 만나게 되는 G집. 길가에서 이 집들을 바라보면 마치 강원도 산골의 옛 나무집처럼 단순한 모양이다. 하지만 개울가에서 바라보면 지형에 따라 앉힌 2층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주변 자연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동화되도록 집을 짓는 ‘이정섭식 집 짓기’의 핵심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내촌목공소로 올라가기 직전 백무산 기슭에 멋스러운 나무집 다섯 채가 놓여 있다. 그중 조문건 원장은 F집과 G집 두 채를 소유하고 있으며, 일주일의 3일이나 4일을 내촌에서 보내는 중이다. 사진 속 공간은 동네 사랑방이 되었다는 G집 1층의 내부. 전면에 보이는 사과 그림은 윤병락의 작품이다.

내촌목공소가 만든 집을 만나다

건축을 전공하려 했었고, 현재는 미술품 컬렉터이기도 한 치과의사 조문건 원장. 그가 이정섭이라는 이름을 처음 만난 때는 약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문예 월간지에서 ’21세기를 이끌어갈 미술가 100인’을 선정했는데, 그 작가들 중 가구 만드는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이정섭 목수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프로필을 보니 회화를 전공하고 가구를 만든다는 게 신기했을뿐더러, 당시 소개된 그의 가구 또한 흥미롭기 그지 없었다. 셋 혹은 많게는 대여섯 개의 선, 그리고 나무 덩어리로만 이루어진 테이블. 맨 몸뚱이에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은 가구는 그때부터 종종 그의 뇌리 스치는 기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건축과 미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의 끈으로 인해, 그가 기어이 내촌으로 향한 것은 작년의 일이었다 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났기 때문이었을까. 처음에는 이정섭의 가구만 보러 갔던 원장은, 내촌의 이 나무집에도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내촌목공소 건물로 향하는 길에 마치 강원도의 옛집처럼 단순한 1충 나무집들이 보였어요. 그런데 나중에 설명을 들어보니 마치 우리의 전통 한옥처럼 지형에 맞게 앉히듯이 지은 집이라 하더군요. 찬찬히 돌아보니, 과연 반대쪽인 개울가 쪽에서 보면 2층 집인게 눈에 들어왔어요. 게다가 이 집들을 모두 이정섭 목수가 하나하나 손으로 지었단 이야기가 감동이었습니다. 작품 하나 산다는 생각으로 당장 집 한 채 사기로 결정했지요. 작가의 철학과 수작업이 담겨 있으니, 이런 집이 작품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살림집인 F집의 거실 풍경. 조문건 원장은 생활에서 미술품을 즐기는 이이기도 하다. 앞산을 그림처럼 볼 수 있도록 만든 통창 앞에 권대선의 달항아리를 두었다.

조각가 최종태의 목판화가 걸린 다이닝의 코너. 그 옆으로는 멋스럽거 태닝한 컬러의 자작나무 싱크대가 있다. 조문건 원장은 구리시에서 세란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미술과 건축에 대한 오랜 관심과 미감 덕분에 한눈에 이 집의 가치들 알아봤다는 그. 오랜 꿈이었던 주말 주택을 구입한 덕분에 이 집에는 친구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는다 한다. 기자 일행이 떠나기 전 꾸덕꾸덕하게 말린 호박 봉지와 트람젯 연주 CD콜 선물했을 정도로 따뜻한 성품이 느껴지는 이였다.

맞춤 책장을 짜 넣은 G집의 코너. 윤병탁 작가의 정물화를 두어 생동감이 넘치는 코너가 되었다. G집 콘트리트 외관은 이정섭 목수와 김주환 작가가 마치 그림을 그리듯 완성시킨 것이다

미술과 건축이 혼재하는 집 짓기

조문건 원장은 서울에 집이 있고 자신이 운영하는 치과병원도 서울 근교다. 하지만 나이 50이 넘어 생각해보니, 일상의 고단함을 내려놓을 휴식처가 절실더란다. 내촌은 강원도지만 서울 그의 집에서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 덕분에 매 주말뿐 아니라 병원이 쉬는 목요일까지 만나면 그와 아내는 함께 내촌으로 향했다. 그러다 첫 집 F집의 왼편에 위치한 G집까지 구입해, 현재는 내촌에만 두 채의 주말 주택을 두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서울의 생으로 생각하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투자로 내촌의 이 앞산 풍경을 모두 내 마당 으로 가져울 수 있었어요. 사실 작은 갤러리를 갖는 게 저의 오랜 꿈이어서 두 번째 집은 무리해서 구입했던 거예요. 그런데 1년을 살아보니 이 집은 그야말로 그 자체가 완성품이더군요. 공간마다 크기와 장식에 마땅한 이유가 있었고, 그대로 둘 때 더 기품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미술 작품들을 오히려 덜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조 원장이 그리 느끼는 데는 이 집의 이름이 ‘내촌목공소가 만든 집’이라는 데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건축가의 집처럼 지은 집이 아니라, 목수가 직접 손으로 만든 집이라는 것! 특히 이정섭은 가구 하나 만들 때도 재료는 물론 잘 만드는 것에 유별나게 집착하기로 유명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집이다 보니 거창하게는 마치 건축가와 미술가가 하나였던 원시의 시대로 둘아간 것처럼, 작품을 만드는 듯한 집 짓기가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집 외관 중에서 콘크리트로 시공된 부분들 찬찬히 살펴보세요. 이게 바로 이정섭 목수가 작가 김주환과 함께 일일이 손으로 무늬를 새겨 넣은 거라고 합니다. 이러니 과연 이 집이 그들에게 캔버스가 아니고 무엇이었겠습니까?” 미술과 건축이 분리되지 않은 원초적인 상태에서, 태연하게 집의 외벽에 미술 짓거리(!)를 할 수 있 다는 것. 그에서 받은 충격과 영감은 여전 조원장이 이 집을 살뜰히 살피는 이유가 되는 듯 했다.

살림집의 다이님 테이붕과 벤치도 이정섭 목수가 만든 것. 현관 입구에 걸린 달항아리 그림은 강익중의 작품. 사람들이 자주 방문해 사랑방으로 불리는 G집의 1층. 창밖으로는 연한 새순이 피어오른 나무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갤러리처럼 쓰고 싶었던 G집의 2층에는 오광섭 작가의 금속 작품들을 두었다.

브라보! 내촌 라이프

지난해 4월 내촌을 드나들기 시작했으니, 조문건 원장 부부는 이제 막 내촌의 사계절을 모두 겪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단순하고 정적한 집에 반했다면, 지금은 무엇보다 잘 지은 집이라는 게 자랑거리라 말한다. “이 집은 살 수록 멋이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G집 2층 작은방에서 창밖을 바라다보면 내촌마을의 원경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옵니다. 소담한 풍경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데, 어느 날 아! 이 목수가 창 하나로 낼 때도 치일하게 계산을 했겠구나 싶더군요.” 게다가 좋은 나무 재료로 지은 집이라 이곳에 머우는 동안에는 머리가 맑아진다는 것, 포름알데히드 같은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집이라는 것 등등 조 원장의 집 이야기는 인간이 응당 누려야 할 존엄의 품질을 갖춘 집이라는 데로 이어졌다. 또한 지난해 영하 20도가 넘게 떨어지는 강원도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이 집은 보수할 곳 하나 없이 온전히 겨울을 났다고도 했다, 전통 한옥의 ‘맞배지붕 홑집’에서 따온 지붕의 각도 덕분에 여름 장마철에도 비가 새지 않았고, 겨울에도 눈이 많이 쌓이지 않는 실용적 강점이 있었다는 게다.

“집이 사람을 바꾼다고 하잖아요. 저의 경우에는 내촌의 나무집 덕분에 생활에 활력이 생겼습니다. 내촌 집에 오면 제일 먼저 벗자루를 들고 땀 흘리면서 툇마루부터 쓸어야 하거든요. 산에 가서 나무를 직접 하거나, 집 앞에 잡목이나 풀을 베는 일도 수시로 해줘야 하고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적당한 불편이 주는 즐거움이 정말 대단합니다.” 내촌살이 1년 만에 그의 집은 아랫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으로도 불린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날이면 아랫마을의 철공소나 가게에 들러 일일이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다 보니 차로 5분 거리를 3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을라오기도 한단다. 실제 기자 일행의 촬영 중간에 바삐 음식을 한 그의 부인은 아내가 다리를 다쳤다는 철공소 집으로 반찬 배달을 나섰고, 또 그 중간에는 마을의 친구라는 이가 올라와 향긋한 봄나물을 소쿠리 가득 건네주고 가기도 했다. ‘내촌의 집 덕분에 이웃과 소통하는 법을 알게 됐다’는 그의 이야기를 즐거이 들으며, 여틈이 되기 전 다시 한 번 내촌의 이 정직한 집을 방문하겠노라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넸다.

G집 2층의 작은방은 집주인 조문건 원장이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다. 이 방의 작은 창문으로 내촌마을 풍경을 내다볼 때마다 설레는 기분이 든다고. 책상으로 쓰고 있는 가구는 사실 이정섭 목수가 신발장으로 만들어준 것인데, 간소한 크기와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2층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2층에는 1인용 침대 두 개가 놓인 게스트룸이 있다.

2층 작은방에는 그간 모아온 소반과 도자기도 두었다. 이 집에 이사 오기 전부터 전원주택을 만들고 싶었던 조문건 원장은 이미 2년 전 금속공예가에게 부탁해 벽난로를 주문했었다 한다. 내촌의 나무집으로 이사오면서 드디어 지난겨울 내내 벽난로를 실컷 쬘 수 있었다고.

G집 2층에서 계단을 통해 1층을 내려다본 모습. 이 집의 원래 주인이던 여성을 위해 제작했다는 화장실 세면대.

기획 홍주희 기자

사진 전택수 Jeon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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