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사람들 시詩가 안 되면 수필을…, 2014/07

시詩가 안 되면 수필을…

목수 이정섭은 마산고를 중퇴, 검정고시로 서울대 미대에 진학한 뒤 한동안 그림을 그렸다. 12년 전 홍천 산골로 들어오면서 목수로 변신했다. 깡마른 얼굴이 나무 등걸을 닮았다. 그는 가구 만들기에서 나아가 요즘은 주로 집을 짓는다. 건축계의 신예로 주목받고 있다.

1 이정섭의 가구는 ‘미니멀의 극치’를 구현한다는 평판이다. 야무지고 간결한 의자에서 힘이 느껴진다.

2 이정섭은 가급적 장식성을 배제한다. 멋부리지 않은 가구가 좋은 가구라는 믿음 때문이다.

3 이정섭의 거처는 해발 300m, 북향의 외진 고산에 있다. 땅값이 싼 곳이라서 자리를 잡았단다.

목수 이정섭(43)은 강원도 흥천 백구산 기슭의 후미진 산골에서 12년째 살고 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그는 젊었던 한 때 서울에서 화가로 살았다. 지하철에 실려 일터와 집을 오가며 밥을 버는 군상들을 소재로 한 ‘지하철 2호선’이라는 타이틀의 개인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돌연 그림도, 서울도 팽개치고 산골로 이주, 목수로 변신했다.

청춘이란 대체로 쫓기는 운세를 달고 살게 돼 있다. 불안한 미래에, 소동과 불화로 점철되는 사회에, 억압된 꿈에 짓눌리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범이 무섭다고만 할 수 있나. 범이 쫓아오지 않는 삶이 무슨 흥미가 있겠는가. 이정섭은 산골짝에 태연하게 들어앉아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붙여 가구를 만드는 일에 전념했다. 되는 것도, 이뤄지는 것도, 얻어지는 것도 별무했던 그림과 싹 작별하고서 였다. 애당초 집짓기에 관심이 쏠렸으나 가구를 만드는 쪽이 돈도 되고 삶을돋울 가망성이 높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의 판단은 빗나가지 않았다. 목수로서 존재를 부각하는 데에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 알아주는 호감들, 알아보는 눈들, 알려주는 입들이 그를 추켜세웠다. 그가 운영하는 공방 ‘내촌목공소’는 호사가들 사이에 정평이 나 명품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불철주야 가구 만들기에 쏟은 공과 품, 집중된 근로, 그리고 날렵한 머리와 학벌까지가 성과를 끌어냈을 것 같다. 작업장에도, 전시장에도, 나무향이 자욱해 그윽하다 못해 아찔하다. 해서, 정갈한 여인의 향기가 아니고서야 무엇으로 이 은근한 나무 향에 필적할 것인가, 슬 쩍 농을 던져보는데, 정작 이정섭은 아직 시동이 걸리지 않은 엔진처럼, 조용한 나무토막처럼 무표정하다.

나무라는 소재에 착안한 계기가 있었나?

“특별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다. 나무라는 자연에 더 익숙한건 목수인 나보다 아마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나무를 좋아할까. 그걸 생각해 봤는데 김형경이라는 작가가 이런 말을 했더군. ‘유전자 속에 각인된 그 무엇 때문에 인간들은 나무를 좋아한다.’ 그 얘길 듣고 그럴싸하다 공감했다.”

유독 나무를 좋아하는 취향 같은 게 있진 않다는?

“사람들이 나무를 좋아하는 정도에서 더도 덜도 아니다. 나무라는 소재의 장점은 다루기 쉽다는 점이다. 금속이나 콘크리트를 다루자면 훨씬 어려운 공정과 기계설비가 필요하다. 물론 따지자면 나무라고 쉽지만은 않다. 목재도 숨을 쉬고, 따라서 까다로운 과정이 필요하고, 디자인 작업도 만만치 않다. 그 어려운 요소들이 목수에게는 작업하는 맛과 재미로 다가오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지나친 나무 예찬을 경계한다. 쉽게 가공할수 있는 재료일 뿐이다. 나무만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재라고 할 수도 없다.”

당신이 만든 가구는 매우 비싸다. 왜지? 호두나무 식탁 하나가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비싼 게 아니다. 훨씬 더 비싸야 한다. 이는 활엽수 원목 가격, 아이디어, 스태프들과 목공소의 존재 비용까지 따지자면 결코 비싼게 아니다.”

잘 팔리나?

“별로. 천만 원짜리는 한 달에 한 개 정도 나간다. 우리 사회는 질(質)에 대한 비용을 다른 데에 쓴다. 재산을 증식하거나 … 강남 부유층들이 내 가구를 선호한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다르다. 디자이너나 대학교수 같은 전문가 집단이 주 고객이다.”

고 김수근 선생의 작품으로 국내 현대건축 중 베스트로 꼽히는 공간사옥에 이정섭 가구가 들어가 있다. 스위스의 세계적인 침대 브랜드 휘슬러 네스트와 손을 잡기도 했다. 목수 이정섭의 매력이 거둔 성취인가?

“가구는 반도체도 아니다. 기술력은 그다지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누구나 목숨을 걸고 하면 못할 게 없다. 중요한 건 태도의 문제다. 책임감이라는 것, 그리고 좋은 원목을 써야 한다는 것.”

목수 김진송에 따르면 좋은 나무, 나쁜 나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나무의 개성과 쓰임에 맞추게 되면 모든 나무가 다 좋은 원목이라는 얘기다.

10년 넘게 목수 경험을 해보니까 아주 좋지 않은 목재도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쉽게 썩거나 휘어지거나, 또는 불에 약한 나무, 구조물 하중을 견디지 못하는 나무를 좋다고 할 순 없지 않겠는가. 일테면 국내산 육송은 가장 좋지 않은 목재다.”

어떤 한옥 전문가들은 소나무의 우수성을 예찬한다. 금강송의 경우,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 간다고 한다.

“소나무 밖에 없었으니까 소나무를 썼을 뿐이다. 전통 한옥의 누(樓)를 보라. 썩어 내린 경우가많다. 금강송은 종(種)이 아니다. 수백 년을 자라며 나무의 세포가 죽어 송진이 내부를 채운 나무다. 한 마디로 관솔 덩어리다. 소나무 자체가 싼나무에 속한다. 침엽수 특유의 한계를 자명하게 드러내는 목재다. 최고의 목재는 북미산 활엽수, 즉 호두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 등등인데 나는 그것들을 수입해 쓴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기후 풍토 속에서 활엽수는 거목으로 자라질 못한다.”

“내 페이스대로 간다”

살림채로 자리를 옮겨 탁자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신다. 창밖엔 성성한 초록숲, 실내엔 역시나 나무 향이 진동한다. 탁자는바윗덩이처럼 듬직하다. 의자또한 쇠로 만든물건처럼 무거워 의젓하다.

당신의 가구는 ‘미니멀의 극치’를 구현한다는 평이 있다. 단순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누구나 장비만 주어진다면 비숫한 걸 만들어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결례된 얘기지만-.

“나는 장식적 형태가 싫다. 오히려 반(反)미감적 가구를 추구한다. 멋 부리지 않은 글이 더 좋지 않던가?”

바탕이 허울(文)보다 앞서면 거칠어진다. 공자의 말이다, 기교를 배격하는건 옳지 않다는 말씀인데….

“비례나 균형, 이게 가구의 본질적 조건이다. 간과할수 없다. 실용성 보다 우월한 요소라서. 가구를만들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쉬운 일이 아니다.”

가구도 예술인가?

“세상의 가구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나는 목수일 뿐이다. 시가 안 되는 사람이 시를 쥐어짜자면 얼마나 힘들까. 시적 함축에 곤란을 느끼는사람이라면 산문을 쓸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경계에서 시가 되지 않는다면 수필이라도 쓰겠다는 생각으로 가구를

목수 이정섭, 많이 알려진 이름이 되었다. 이름난다는 거, 드러난다는 거, 불편하진 않은가? 고요한 성격의 소유자로 느껴져 묻는 얘기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니겠는가.(웃음) 나는 그저 내 페이스대 로 간다. 이왕에 시골에 들어왔으니 뭔가 주민들에도 도움이 되는 모범사례가 되고 싶어 공동사업을 열심히 기획하고 실천하고 그랬다. 그러나 사실은 적절히 한 발 빼고 지낸다. 그들과 나는 서로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시장 전경. 가구와 천정에 사용된 목재는 북미산 활엽수 원목이다. 숲속에 들어온 것처럼 나무 향이 진동하는 공간이다.

1 목공실 곳곳에 나무며 연장들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특유의 성향이 엿보이는 풍경이다.

2 ‘내촌목공소’는 이정섭의 작업장. 이젠 가구의 명품 브랜드로 통하는 이름이 되었다.

3 살림채 마당에 풀들이 웃자란 건 손볼 시간이 없어서다. 차라리 싱그러운 경관이다.

내촌은 오랫동안 깜깜한 오지에 속했다. 하지만 둔갑이라 할까, 확실하게 변하고 있다. 새가 건너고 바람이 수면을 고즈넉이 흔들며 지나던 강물 양안에 알록달록한 전원주택과 별장 펜션 야영장이 들어섰고, 도급공사까지 연달아 벌어져 난장판에 가깝다. 이 판국에 으스러지는 건 인심이라지.

물신이라는 하나님을 모시는 세태의 각박함에도 불구하고 시골사람들에게 여전한 인정과 야성이 살아있다는 경험을 하진 않았는가.

“세상사람 거의 전부가 냉혹하고 부도덕한 자본 논리에 덜미를 잡혀 살아가는데 일각에 남아있는 인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잔존하는 인정을 통한 위선적 위안을 얻으려는 생각 자체를 버리는 게 나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이미 너무 기울어 있다. 소외된 자들에게 그냥 그대로 살라, 노골적으로 밀어붙이는 세상이라 해야 하나?”

귀촌로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안일 수 있을까? “뭔가 가능성을 타진하는 움직임은 충분히 의미 있다. 그렇다고 자본의 논리를 부정할 것도 없다고 본다. 어쨌든 세상은 나선형의 바퀴처럼 돌고 돌겠지. 한결 진지한 성찰을 해야하는데, 나는 단순하고 즉자적이다. 나이 들수록 혼란이 커진다.”

사는 게 별 재미없다는 표정이다.(웃음)

“타고나기를 그런 걸 어쩌나?(웃음) 개인적으로 난 재미라는 걸 부정한다. 뭐 크게 재미있을 일이 뭐란 말인가. 그렇다고 재미를 가지고 사는 사람을 욕할 것도 없다. 다만 그게 대안은 아닐거라는 생각이지. 과연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걸까. 인간이 과연 잘 살 수 있는 존재이기나 할까.”

나무에게, 자연에게 물어보면 답이 돌아오려나?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애호하지 않을테지만-.

“뒷산을 한번 제대로오른 일이 없다. 가만히 있는게 좋아서. 그러나 자연이 좋다는 걸, 시골이 괜찮다는 걸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에서 느끼며 산다. 분업 시스템이 인간을 파편화하는데 그게 적은 사회가 시골이기도 하다.”

소목에서 대목으로

무욕도 탐욕이라지? 어쩌란 말이냐. 삶이란 유례없는 난관의 연속이다. 자연마저 귀차니즘을 증대시킬 수 있다. 일단은 나태를 물리치는 게 문제의 단초라는 게 이정섭의 생각이다. 어쩌면 그는 일벌 레다. 고픈 배는 나중에 채울수 없는 법. 그는 가구 만드는 일이 성 에 차지 않아 요즘은 집을 짓는다. 소목(小木)에서 대목(大木)으로 전환했다.

좋은 집이란?

“집이란 안전한 피신처다. 골치를 썩이지 않는 집, 인간에게 해로운 화학성분을 뿜지 않는 집, 춥지 않은 집이 좋은 집이다. 나는 방한을 위한 수입 창호 등 최고의 자재를 쓴다. ”

과거의 집들은 대충 다 추웠다. 그러나 끄떡없이 잘살았다. 크고 좋은 집을 바라는 사람들의 허영과 허세가 극에 달한 건 아닌가?

“문화가 달라졌지 않은가. 게다가 집이란 주거수단이 아니라 재산가치로 기능하는 세상인 걸 모르나?”

당신처럼 똑똑한 목수가 왜 작고 소박한 집을 추구하지 않는가?

“그건 국가가 할 일이지 개인이 할 순 없다. 그런 쪽에 관삼을 갖다보면 거지 되기 십상이고.(웃음) 내게는 삶의 무게랄까, 그런 것에 애써 둔감하려 하고 외면하려 하는 성향이 농후하다. 이게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목수 세계엔 명장 명색으로 활개치는 사기꾼도 있다.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자면 이 판은 아예 없어져야 한다.”

얘기를 듣고 보자니 당신이 목수로서 집짓기에 집중하는 것인지 비즈니스를 즐기는 것인지 분간이 안된다.

“온통 집중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내게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하자는 생각일 뿐.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으로 여기는 눈들이 있지만 바쁠건 없다. 시간을 보내는 나의 방식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이 어떤 일에 집중한다는 게 가능한가? 목숨을 걸다시피 할 일이 있겠는가? 그럴 필요가 있느냐, 그 말이다.”

왜 없을까. 연애에 한번쯤 목숨 걸지 않는다면 그게 사람일까? 당신은 미혼이다.

“아직도 청춘이시군.(웃음) 나는 연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인간의 요구와 욕망, 그걸 교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게 용납되지 않는다. 결혼은 왜 하지? 겨우 그 정도의 사회적 장치로 돌아가는 게 세상인가?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나?(웃음) 난 인간의 간섭이 싫다.”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목수를 데려간다. 사람의 간섭에서 놓여날 장사가 있을까. 현실은 진부하되 멈출 길 없다. 밀려드는 파도에게 멈추라 명령할 수 없듯이.

글 박원식

사진 주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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