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d Planet 평창동 내촌목공소 한옥 이정섭 언어가 빚은 당당하고 우아한 집, 2014/11

이정섭 언어가 빚은 당당하고 우아한 집

평창동 사람들이 잘빠진 창고 같다고 말하는 집, 미로 같은 길을 타고 올라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 만나는 이 집의 정체는 ‘그리하여, 최고의 나무공간’이다. 평창동 내촌목공소 한옥은 통상적 개념의 한옥으로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버선코를 닮은 기와지붕의 선도, 비어 있어 채워진 마당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실패한 한옥인가? 가쁜 숨이 좀 채 진정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전통한옥이 수식하는 특징을 찾고자 노력한다면 바보 같은 짓이다. ‘내촌목공소 한옥’ 은 이정섭 이 고안한 한옥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기존 한옥에 대한 개선과 진화의 여지가 목수 이정섭의 손을 타고 좀 더 구체화된 곳이다. 그래서 내촌목공소 한옥은 여느 명문가의 집을 재현했다거나 이름난 대목장의 영향을 받은 집이 아니다. 이정섭 고유의 것, 그가 ‘현대적 한옥은 이런 모습이다’ 하여 주석을 단 집의 모습이다. 때문에 내촌목공소의 한옥은 독창적이지만 낯설다. 대목과 소목 구분없이 하나의 개념으로 짜맞춤한 집이기 때문이다. 기와를 얹거나 화려한 보아지 장식도 과감하게 생략했다. 철저하게 현대인의 쓰임에 맞게 조각된 집, 그러나 기둥과 보가 주는 당당한 골조는 그대로다.

한옥은 정신과 시대를 담은 집

‘대목 이정섭’ 역시 낯설다. 2002년 세상에 선보인 이정섭의 가구 스타일은 ‘디자인 없는 디자인’ 이었다. 기능적이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소목의 작업은 집 짓기 과정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간략한 오늘날 한옥주택 모티브를 너와집에서 찾았고, 날렵하고 가 벼운 몸체에서 한국적 미감을 얻었다. 평창동 주택을 만날 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 가벼운 지붕이다. 기와를 쓰지 않은 집을 두고 한옥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의도적인 생략은 그의 가구처럼 버리는 것에서 참뜻을 찾는다.

〈고려사〉기록에 따르면 의종이 가벼운 지붕을 구조 하는 데 으뜸이 무엇이냐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이때 마을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가장 좋은 것이 나무 속 껍질을 벗겨 여러 겹 겹쳐 만드는 지붕이라고 답했다. 사실 기와가 한옥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순 없다. 국왕이 선택하고 장려했다는 이유로 한옥 위에 굴피와 너와를 올리는 일은 널리 보급되고 장려되었다. 후대 기와지붕에 용마름이 권위의 상징처럼 여겨졌듯이 백두산 지역 전통가옥에는 말쑥한 너와지붕에 용마름이 올라선 채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고 있다. 내촌목공소 한옥 역시 동시대의 최신 공법과 검증된 자재를 채택한 경우다.

내촌 목공소 한옥은 전통한옥과 비교하면 경제적인 건축이다. 그러나 품질을 개선하고자 창호와 단열재를 사용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프랑스산 지붕패널, 미국 혹은 뉴질랜드산 단열재, 독일 제조의 시스템 창호도 이정섭식 한옥에는 단골이다.

“박공지붕을 적용한 이유는 오랜 인류 역사가 검증한 가장 완벽한 지붕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건축을 시작한 덕분에 자연환경과 조화로운 집을 고민해 왔습니 다.”

목수 이정섭에게 한옥은 어떤 개념일까. 그는 시대에 따라 부단히 변하는 삶의 여러 형태를 반영하는 것이 한옥의 개념이라 설명한다. 이 속에는 문화와 사상과 환경의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옥은 재료나 형태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다.

“기와지붕의 선을 따오거나 옛날 구조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전통의 계승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한국인이며 이 땅에 지어지는 집이며 거기에 저의 정신과 우리 삶의 양식이 담겨 있다면 그 자체로 한옥의 정체성은 생긴다고 봅니다.”

생각하는 손,이정섭의 건축

평창동 내촌목공소 한옥은 다층 목구조이다. 기존에 있던 콘크리트구조 위 집을 헐고 2층 목구조를 신축했다. 무엇보다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골조를 살피자면 팀버프레임 주택이 연상된다.

건축주 부부는 우연히 강원도를 여행하다가 마음을 사로잡는 건물 한 채를 발견했다. 〈우드플래닛〉창간호에 소개된 홍천 소재 내촌목공소 한옥이었다. 부부는 무슨 작심이라도 한 듯 이 집에서 하루만 머물다 가게 해달라고 청했다. 이정섭 목수는 흔쾌히 수락했고, 다음 날 아침 이들 부부에게서 이곳을 닮은 집 한 채를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응하고 보니 땅 보러 다니는 일부터 이 목수의 몫이었다. 설계도 당연지사. 북한산 산세와 어울리는 집을 그려나갔다. 그래서 처음 이름을 평창 산간한옥이라 명명했다. 이어 나무를 다루는 최초 치목작업에서부터 최종마감 공정까지 세심하고 꾸준한 작업이 이루어졌다. 산허리 경사면에 지어지는 집이라 철저한 보완이 필요했다. 안전진단, 설계 검증과 보완은 디엠피 건축의 황철호 건축사가 담당했다.

“처음 구상은 미술관과 주거를 결합한 목재 구조 건축이었습니다. 기존에 짓던 ‘살림집’과는 다른 구성과 스케일을 적용한 겹집 구조로 지었고요. 건축 디자인뿐 아니라 공간 내부 조명, 가구까지 이어지는 토탈 건축이 이루어졌습니다.”

북한산 품에 안긴 집의 통창을 타고 북악산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산속의 집, 그리하여 평창동주택의 처음 이름은 산간한옥이었다

1년 4개월간 작업 끝에 내촌목공소가 지은 또 하나의 한옥이 들어섰다. 북악산 스카이라인이 한가득 창을 채우고, 안산 줄기 가장자리에 여의도 전경이 펼쳐지는 곳, 이 산간한옥은 서울의 역사와 자연환경을 담아내기에 충분한 배포를 가졌다. 당당하게, 그리고 우아 하게.

“당당하고 우아한 집이라는 화두를 건축주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내촌목공소 류의 집이 그런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본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건축주는 이정섭 목수에게 무한 신뢰를 보냈다. 이 신뢰의 바탕에는 그간 목수 이정섭이 다져온 예술적 성취에 대한 믿음이 깔려있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가구를 만드는 이가 지은 집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신뢰. 홍천 내촌 한옥은 충분한 유혹의 크기를 가졌고, 문학을 전공한 건축주는 주변 환경에 순응하는 문법을 바르게 읽어냈다. “따뜻한 집, 비가 새지 않는 집이 좋은 집입니다. 기본적인 요건 외에 건축물에서 사용하는 전기 에너지 사용량도 최소화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평창동 주택도 예외는 아닙니다. 창을 타고 전해지는 온기만으로 별 무리 없이 환절기를 날 수 있도록 시공되었습니다.” 대목 이정섭은 ‘집다운 집’의 정체성을 한국인의 DNA로 풀이하고 있다. 머무는 곳이 체질과 맞는 공간에 들면 누구든 ‘편안하다’고 말하게 된다. 이 집에 왔을 때 불편한 무엇을 찾아보려 했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한국인에게 적당한 집, 그런 면에서 이곳은 ‘한옥’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우리는 오래 머무는 객 이 되었다. 이유를 물었을 때, “글쎄요. 동시대의 한국인이면 느낄 수 있는 정서를 읽은 것이 아닐까요?” 라는 답변이 오고 갔다. 그리고 “나무집이기 때문”, 이라는 대목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무릎을 쳤다.

그는 흙, 돌, 나무 같은 전통적인 재료를 고집하는 목수가 아니다. 아니, 이정섭은 오히려 싫어하는 쪽이다. 가능하면 자연의 재료 중 좋은 것을 찾아 쓰는 것은 맞지만 전례 양식을 따르고자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하는 집은 사양한다. 다양한 재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쪽에서 건강한 집을 짓고자 노력하고 있다. 가령, 나무의 단열 값은 콘크리트의 일곱 배에 달한다. 하지만 단열재로 쓰이는 스티로폼은 스무 배가 넘는다.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는 열린 것이 된다.

지하서재

자연을 닮아 존엄한 나무건축

평창동 주택의 전체 폭은 30m에 이른다. 열한 개의 종보를 머리에 인 회랑을 닮은 복도가 시원하게 뻗어 있다. 대들보는 고사하고 보 기둥에 쓰일 부재조차 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를 해결할 방도가 글루램이다. 건축 프레임을 이루는 기둥과 보, 도리에는 소나무와 전나무, 가문비나무가 쓰였다. 경민산업에 의뢰해 이곳으로 옮겨와 수직 벽체를 세웠다. 글루램 방식은 강도면에서 뛰어나 평창동 주택과 같은 다층 중목구조에서도 안정적인 구조재 역할을 한다.

1층 출입구에 들어서면 남매의 생활공간이 나온다. 물푸레나무 집성계단을 오르면 부엌과 건축주 부부의 생활공간이 등장한다. 박공 아래 발코니는 북악산을 조망하고, 부엌 쪽 작은 창을 통해 사시사철 살아 움직이는 북한산의 미세한 변화조차 전해진다. 발코니에 나서면 경량의 목구조와 구분되는 우아한 목조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건축주의 요구사항인 ‘우아한 집’에 대한 고민은 설계 단계에서 해결된 셈이다. 이정섭 목수는 사실 ‘당당한 집’에 대한 요구는 자신 있었지만 ‘우아한 집’에 대한 고민이 따랐다고 농담처럼 고백했다. 강원도 산골에서 살고 있기에 우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우스갯소리다. 수평부재가 결구된 채 평창동 고급주택가 가장 큰머리에 목골건축의 위용이 드러났을 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빔의 테넌이 기둥 장부를 물고 선 모습을 확인한 주민들은 탄성을 질렀다. 짜맞춤 방식으로 목재를 연결한 진정한 의미의 조립식 주택은 감동 그 자체였다.

지하층 디자인 콘셉트는 ‘복도’가 돋보이는 갤러리다. 문학을 전공한 건축주 부부는 이곳에 자연과 조화로운 예술공간을 마련했다.

2층 생활공간에는 3개의 방과 2개의 화장실이 놓였다. 횡부재까지의 높이는 바닥면에서 4~5m에 이른다. 가구식으로 방을 배열하는 전통방식과는 달리 가운데 복도가 놓이는 구조라 공간 천장은 휘발성 유기 화합물이 제거된 친환경 합판으로 마감했다. 보와 도리 아래 천장 공간은 자연스레 다락방이 되었다. 복도 끝에는 오픈형 침실이 있다. 과감하게 문을 제거해 공간 전체에 주인공이 머무는 생활공간임을 강조한 듯 보인다. 서재는 합판처리 덕에 층고가 낮아져 안락함을 준다.

복도 반대편 부엌 공간에는 오크로 짠 이정섭의 식탁이 놓였다. 자작나무와 물푸레나무로 문과 주방가구를 제작했다. 일반 한옥과 비교해 “내촌목공소 한옥에는 다양한 활엽수, 침엽수가 사용될 뿐 아니라 전통 방식의 목재 건축보다 더 많은 수량의 목재를 구조재, 내장재, 외장재 그리고 고정가구에 사용되고 있다” 는게 이정섭 목수의 설명이다.

또 좋은 나무는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무겁고 물에 가라앉아 비싼 나무만 좋은 나무가 아니라 용도에 맞게 쓰이는 나무가 좋은 나무” 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가볍고, 경제적인 나무도 많습니다. 우리 소나무가 최고라고 고집하는 일부 목수들과 이에 감상적으로 동의하는 분들은 세계의 다양한 목재에 대한 경험이 아직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왼쪽 사진 1층에서 핸드레일을 생략한 물푸레 계단을 타고 오르면 천창이 마련된 집성 목골보를 만날 수 있다. 이정섭 목수는 강원도 산간 너와집에서 디자인콘셉트를 찾았다.

어우러지는 집이 좋다

내촌목공소 한옥에 투입되는 모든 목재는 터짐과 뒤틀림이 적다. 목재건조률(함수율)이 12%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글루램 방식 채택도 터짐과 뒤틀림을 막는 묘수가 된다. 내장재로 쓰인 목재 중 호두나무가 눈에 띈다.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문 손잡이가 주인공이다. 이 문 잠금장치를 두고 특허는 냈느냐는 질문에 그저 웃고 마는 이정섭 목수는 “저는 집의 품질에만 관심 있을 뿐입니다” 라고 말했다. 집의 외장은 일본산 삼나무 차지다. 칠 마감을 거친 마감재는 검은 색조의 고급스러운 기운을 뿜는다. 홍천 내촌목공소 한옥에 사용한 결과 5년이 지나도 견 고하고 은은한 잿빛을 간직하고 있다는 게 이 목수의 설명이다.

다시 지하층으로 내려간다.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진 지하공간은 갤러리와 작업실로 쓰인다. 미술과 음악을 전공하는 딸과 아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한쪽 넓은 공간이 갤러리다. 현재는 서울대 미대에서 이정섭 목수와 함께 수학한 김주환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층 복도는 미술작품들과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복도 끝 전망창을 타고 북악산 일 부가 들어온다. 이곳에서 이정섭 목수에게 다시 물었다. 가구 만드는 일하고 집 짓는 일의 차이를. 그는 “가구는 고독한 작업이지만 건축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며 양단을 설명했다. 또 “가구는 단순하지만, 집의 디테일은 도면에 모두 옮기기가 어려워 현장에서 끊임없이 대화하며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고 부연했다. 어쩌면 그의 감성은 가구 작업에 적합하지만 체질은 건축 쪽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공부하는 건축주의 아들이 마음껏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을 헤아리고, 강남 아파트에서만 생활해온 부부의 일상을 북한산 아래로 옮겨온 것도 자연과 어울리도록 건축주를 배려하는 마음이다. 부부에게 자연은 일부가 되었고, 오디오 볼륨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또 학원에서 함께 일하는 강사와 직원들을 식구로 맞아들였다. “좋은 것은 함께 나눠야 삶이 개선된다는 생각” 에서다. 그래서 총 다섯 세대가 내촌목공소 한옥 아래 살고 있다. 이들 가족은 건축가 김봉렬 한예종 교수가 정의한 ‘한옥은 한국인의 삶을 담은 집’ 속에서 바뀐 삶의 형태를 받아들이고 있다. 여유와 집이 주는 즐거움 속에서.

건축주 아내는 흙이 보이니 자연스레 텃밭을 열었고, 남편은 계단 허리에 ‘山林貞舍’ 라는 글귀를 새겼다. 모든 게 즐거움의 일부다. ‘그리하여 곧은 나무를 타고 하늘을 향해 지어진 이 집도 마침내 땅으로 내렸다. 당당하고 우아하게.’

전망창을 타고 자연이 펼쳐지는 이곳은 건축주 가족의 삶을 담은 거실공간이다. 거실 한 쪽에는 김주환 작가의 미술작품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글 유재형 미디어팀장

사진 장뤽 리 (Jeanluc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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