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가득한 집 결 고운 나무 집 내촌목공소에서 지은 퇴촌 한옥 , 2015/01

집은 설계가 주는 감동이 있고 시공 디테일이 주는 또 다른 감동이 있다. 내촌목공소 이정섭 목수가 8개월간 한 땀 한 땀 지은 퇴촌 한옥은 명민한 설계가 주는 편리함보다는 사람의 손맛이 만들어내는 감동이 더 큰 집이다.

잘 건조한 나무를 구조재와 마감재로 사용하고 휘발성 유기화합물 제로 원칙을 고수한 사람 중심의 집. 퇴촌 한옥에서 정직한 집 짓기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옥 이론으로 정평이 나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봉렬 총장은 저서 <한옥에 살어리랐다〉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주택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렇다면 한옥은 한국인의 삶을 담은 집이다. 삶의 모습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옥은 불변의 고정된 모형이 아니라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적응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고려시대에는 고려적인 한옥이, 조선시대에는 조선적인 한옥이 있은 것처럼 21 세기에는 이 시대에 맞는 한옥이 존재한다는 것. 새로운 재료와 기술이 출현하 고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라 형태가 달라질지라도 한옥이 품어야 할 가치를 담고 있다면 결코 한옥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 그가 말하는 한옥 정의의 핵심이다. 시각적 화려함 대신 정서적 풍족함을 주는 집,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며 환경친화적 목구조체틀 속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집이 바로 한옥이 품어야 할 가치일 터. 내촌목공소에서 퇴촌에 지은 집을 자신 있게 한옥’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서울에서 원단 사업을 하는 건축주가 은퇴 후 이주하기 위해 지은 주말 주택 퇴촌 한옥. 나무를 사용한 전통 짜맞춤 방식을 고집하고 성능이 우수한 친환경 마감재와 천연 원목 가구를 사용해 집에 들어서는 순간 은은한 나무 향에 먼저 취한다.

기본을 지킨 집 집주인과 이정섭 목수의 인연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이정섭 목수의 가구 전시를 본 집주인은 아들이 쓸 책상과 의자를 고를 요량으로 내촌을 찾았다. 하지만 웬걸, 의자 하나를 만들기 위헤 재료는 물론 모든 공정에서 엄격한 기준을 고집하는 목수의 작업 현장을 직접 보고 그의 팬이 된 집주인은 그 뒤로도 몇 달에 한 번씩 내촌을 찾았다. 목수가 손수 지은 나무 집에 머물며 가구뿐 아니라 건축과 미술에 대한 그의 철 학을 접한 집주인은 언젠가 집을 짓는다면 꼭 이 목수에게 맡기리라 결심했다.

9년의 기다림 끝에 완성한 내촌목공소의 퇴촌 한옥 설계부터 시공, 짜맞춤 가구 까지 모두 목수가 직접 수작업하는 내촌목공소의 한옥 중 퇴촌 한옥은 열여덟 번째 프로젝트로, 전통 한옥의 맞배지붕과 처마를 구현하고 기둥과 보로 칸을 나눈 전통 방식의 나무 집이다.

“현대 건축은 설계자와 시공자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 전통 건축도 나 무를 다루는 목수와 지붕을 올리는 와장, 돌을 놓는 석공이 분리되어 있지만 엄 밀하게는 디자인과 설계, 시공을 모두 관장하는 대목이 있었으니 토털 건축이라 고 봐야겠죠. 설계와 시공을 분리하지 않아 집의 품질을 확보한다는 점, 나무를 사용한 전통 짜맞춤 방식을 고수한다는 점은 전통 방식 그대로의 한옥입니다. 하지만 굳이 관리하기 어려운 소나무나 기와를 고집하지 않으니 외형만 보면 이 른바 말하는 전통 한옥의 기준에서 벗어났다고도 할 수 있죠.”

전통을 이어가려면 어느 정도 시대상을 반영헤야 한다고 믿는 이정섭 목수는 전통 건축에서 디자인적으로 좋은 요소는 콘셉트로 적용하고, 효용 성을 떨어뜨리는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한 내촌 목공소만의 한옥을 제안한다.

집으로 들어서면 우선 나무 냄새에 취한다. 한 달 전 완공한 집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자연의 냄새가 가득 배어 있다. 서울에서 원단 사업을 하는 집주인은 먼저 세컨드 하우스로 사용하다 은퇴 후 이주할 계획으로 이 집을 지었는데, 새 집 같지 않고 너무 편안해 오히려 이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단다. 좋은 재료로 지 은 집이라 그런지 자고 나면 머리가 맑아진다는 것. 그러고 보니 이 집은 나무 아 닌 다른 소재를 찾아보기 힘들다. 건축 구조재와 기둥, 보, 도리에는 소나무와 전나무 가문비나무를 사용했으며 외벽 마감재는 일반 외장재로 많이 쓰는 삼나무, 즉 적삼목을 사용했다. 창틀과 조명등, 문들은 단단한 물푸레나무와 참 나무를, 가구와 문손잡이는 참나무와 호두나무를 사용했다. 아처럼 골조부터 마감까지 나무라는 한 가지 물성을 고집하려면 뒤틀림 등 완성도에 그만큼 자신이 있어야 한다. 내촌목공소 한옥에 투입되는 모든 목재는 함수율(목재 건조율) 이 12%를 넘지 않는다. 특히 소나무는 건조의 유무에 따라 강도와 부식이 네 배까지 차이가 나는 목재로, 낮은 함수율을 유지하면 뒤틀리거나 곰팡이가 필 염려가 없다. 기둥과 보, 도리 등 맞물리는 부분 역시 수치를 넉넉하게 주지 않아도 되니 콘크리트, 유리 소재처럼 둔탁하지 않고 정교하게 마감할 수 있다. 또 교외 주말 주택이라면 응당 걱정하게 되는 웃풍이라든지 단열, 난방 역시 꽤 만족스럽다. 기와 대신 프랑스산 지붕재에 뉴질랜드산 울 단열재, 성능 좋은 현대 창호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맞배지붕에 부분적으로 뚫린 천창은 단열에서 중요한 채광을 해결해주는 요소다. 한옥처럼 창이 작고 처마가 있는 집이야말로 사계절 고른 채광을 유지해주는 천창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목수의 지론이다. 또 전통 방식과 현대 소재, 전통 소재와 현대 방식이 조화를 이루는 비결은 바로 ‘수 작업’에 있다. 설계 후 바깥에서 집을 짓는동안 내촌목공소 안에서 가구와 문짝, 선반, 옷걸아 스위치 커버까지 손수 제작하는 것. 그래서일까? 이 집은 살림이 많지 않고 별다른 장식이 없는데도 마치 하나의 공예품처럼 완성도가 느껴진다. 사람이 손으로 나무를 하나하나 가공해 지었으니 건축이라기보다는 공예품에 가까운 거실이다.

1 황토 온돌방은 집주인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거실에서 장작불을 땔 수 있다.

2 주방 옆 통로. 두 개의 문 밖으로 보이는 뷰가 단아하다.

주방에서 거실을 바라본 모습. 골조부터 마감까지 나무 소재를 사용하고 맞배지붕과 작은 창, 기둥과 보로 칸을 나눈 전통 방식을 고수했다. 실내에서 장작을 땔 수 있는 아궁이가 특징, 아궁이 옆 문으로 나가면 툇마루 형태로 길게 뻗은 테라스가 있다.

집,그 이상의 즐거움 퇴촌 한옥은 주말 주택이자 집주인 부부가 노후에 살 집이다. 이처럼 가족의 생활 주기에 따라 목적과 용도가 변할 수 있는 집은 전형적인 틀에 맞는 공간을 정하는 것보다 적당히 유연한 공간을 남겨두고 실제 거주자가 살면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 본채 옆에 자리한 유리 집이라 부르는 사랑채는 그러한 용도다. 전통 한옥에서 안채가 가족만의 안은 한 공간이라면, 사랑채는 응접 공간이자 다이닝 공간이다. 한쪽에만 주방 시스 템을 갖추고 풍경이 보이는 자리는 비워둔 채, 그때그때 목적에 맞게 가구를 세팅해 사용할 것이라고. 봄, 여름, 가을에는 폴딩 도어를 모두 열어 정자처럼 개방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매일매일 생활하는 집 어딘가에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장소를 만드는 것은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즐거움 중에서도 꽤나 큰 의미를 차지한다. 기름 먹인 은은한 황토색 종이 장판을 바른 뜨끈뜨끈한 온돌방과 실내와 실외의 경계에 있는 툇마루는바로 이 목수가 지혜를 짜내어 만든 공간이다. 실제 집주인은 온돌방에 앉아 아궁이에 타닥타닥 장작이 타들어가는소리에 귀 기울이면, 집이 바로 안식처라는 안도감과 몸속 깊은 곳까지 퍼지는 편안함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라 평일에도 시간이 나면 이곳 퇴촌으로 달려와요. 온돌방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팔당호와 앞산이 내 마당처럼 펼쳐지죠. 창 하나를 낼 때도 치밀하게 계산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8개월 동안 아홉 명의 내촌목공소 식구가 동고동락하며 한 땀 한 땀 지은 집. 잘 건조한 나무를 구조재와 마감재로 사용하고 휘발성 유기화합물 제로의 원칙을 고수하며 ‘사람 중심이라는 집의 기본 품질을 갖춘 집. 그냥 지나치기 쉬운 집의 촉감과 향기까지 생각한 집. 무릇 집은 누군가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이 집을 그릇에 비유한다면 그릇의 만듬새는 무척 탄탄했으며 정교하고 정밀했다.

1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침실을 배치. 복도 왼쪽메인 침실 안으로 들어서면 드레스룸 겸 수납공간이, 그 안쪽으로 욕실과 샤워 부스가 자리한다.

2 2층 복도 오른쪽에 자리한 게스트룸. 이정섭 목수와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된 아들의 책상을 창가에 배치했다. 창틀 너머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 풍광이 하나의 작품처럼 펼쳐진다.

3 전통 기와 대신 프랑스산 철제 지붕을 사용했다. 까만 지붕과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이 대비되어 절경을 이룬다.

4 편백나무 사우나는 이 집의 또다른 자랑거리.

5 물이 튀지 않는 욕실 벽면 위쪽은 나무로 마감하되, 요철 디테일을 살려 공간에 입체감을 주었다.

6 벽면 창이 작아 부분적으로 뚫은 천창으로 채광을 확보한다.

7 전통 한옥의 안온한 느낌을 더하기 위해 천장은 낮게 나무로 마감하고 창도 작게 시공했다.

8 종으로 세운 적삼목과 횡으로 쌓은 돌 마감이 대비를 이루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외벽. 길게뺀 처마와 툇마루가 인상적이다.

9 전통 기와 대신 프랑스산 철제 지붕을 사용했다. 까만 지붕과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이 대비되어 절경을 이룬다.

목수이정섭은 내촌목공소 대표다. 독학으로 서울대학교 서양학과에 입학했지만 목수가 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태백의 한옥학교에서 집 짓기를 배운 뒤 가구까지 영역을 넓혔다. 잘 만든 물건이 우리 삶을 건강하게 변화시킬 거라는 믿음으로 손으로 하는 노동의 가치를 고집스레 실천하며 산골 목수로 살길 원한다.

글 이지현 수석기자  

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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