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요소와 해석, 2012, 호림미술관

Element

선사시대 이래 여러 흔적이 보여주는 인간 표현의 대부분은 ‘Metaphor’ 즉 은유였다. 고대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고급 감성을 지닌 은유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수 천년 수 만년 전 조상들의 은유적 표현법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넘어온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들소, 이집트 고분의 뱀,비너스의 원형격인 풍만한 여성, 일본 조몬문화의 까마귀 등 우리는 고대인들의 이런 단순하고도 다양한 그림과 조각, 부조에서 그들의 상상, 기도,사냥의 풍요, 지혜,영원, 부활에 대한 간절한 염원까지도 읽을 수 있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 미술과 건축 역시 metaphor로 발언한다. 은유가 없는 건축은 ‘꿀벌의 육각형 집이나 여우의 토굴과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 범람하는 오브제 중 인간 일상생활의 필수적 용기와 장식에서 비롯된 오브제 등 어느 것 하나 그 본질을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를 간직한 사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고대 문명에서 사용된 의자를 보면 지배 계급의 사용으로 국한된 것, 아니면 신에게 제사 드리는 제단용 정도이다. 19세기 미국 쉐이크교도(the Shakers)가 그들의 궁박한 환경과 종교적 배경에서 나온 절절한 소박함을 보여 주고 있다면 18, 19세기 동시대 조선 가구는 인간이 만든 가구 중 으뜸의 비례와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디자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 세기 초 소위 모더니즘 정신과 함께 ‘기능(function)’이 그 개념의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 은유와 상징의 공간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자리에 오직 조형과 기능만이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다. 지금 이 세상에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는 언어의 현상을 둘러 보면 사회 곳곳에는 직설이 난무한다. 문화, 사회, 정치 종교에서 해학과 여유는 승자의 언어에서 조차 찾을 수 없다. 독해가 필요하지 않다. metaphor는 역사에서 그리고 개인이나 집단의 경험이 바탕 되어 나오는 언어이자 표현이다. 은유가 없는 시, 상상력이 없는 미술, 언어가 보이지 않는 건축과 조형물은 삭막하고 숨이 막힌다.

20대 젊은 이정섭은 미술의 길에 있던 화가였다. 그래서 인지 지금도 그의 작품 속 언어는 회화를 떠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그는 사물로 은유를 표현하는 시인이다. 시인은 은유를 요소로 작업을 한다. 인간이 발을 딛고 살기 시작하면서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사람, 목수 이정섭은 바로 그 시인이다. 맨 몸뚱이 그의 가구는 어떤 것도 치장하지 않았다. 셋 혹은 많게 대 여섯 개의 선 그리고 나무 덩어리, 그는 대단히 응축된 감성 요소를 표현함을 알 수 있다.

구병준

exhibition_2012

생활 속의 아름다움-한옥 공간의 새로운 이야기전, 2008, 아름지기

한옥과 어울리는 가구들-전통의 현대적 조화

Ⅰ.

전통의 현대적인 재현으로 ‘생활 속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아름지기가 올 해에는 안국동 한옥에 내촌목공소의 목수 이정섭의 가구와 한정헌의 소품들을 들여놓았다. 아름지기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한옥과 어울리는 가구들로 어떻게 우리의 전통과 현대적인 삶의 조화를 찾아갈 것인가’를 화두(話頭)로 삼고 있다. 생활습관과 형식이 달라지면서 특히 주거(住居) 공간의 변화와 함께 과거의 전통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을 무수히 보아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전통을 지키는 데에도 돈이 들기 마련이다. 때문에, 한 국가의 경제규모는 그 국가의 전통적인 면모를 살리고 지킬 수도, 아니면 죽일 수도 있는 막강한 영향력올 발휘한다. 그렇다고 경제력이 전통의 보존을 가능하게 하는 최우선 조건은 아니다. 전통을 보는 안목의 지성적인 성숙함 없이 우리는 그것을 지켜낼 제간이 없다. 거기에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통을 박제화(刺製化) 하지 않는 것이다. 전통은 살아 숨 쉬는 우리의 현실과 그 시공간에서 함께 어우러져 진화하면서 이유 있게 민주적으로 변화해야 힌다.

포스트모던 이후 세계화의 물결과 함께 서구 의식주의 패턴이 한국인의 실생활을 지배한지 오래지만, 전통의 계승에 대한 우리의 신념을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한옥의 계승 또한 그것의 보급을 위한 현대적인 표준화와 대중화 작업이 절실하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기본적인 생활의 편리함이 한옥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한옥을 짓고 싶다는 대중의 바람이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상황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축 단가가 지금보다 훨씬 내려가야 하는데, 그 첫 조건이 한옥의 재료와 형식을 표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표준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한옥 짓기에 대해 마치 조선시대 일처럼 거리감을 먼저 느낀다. 그러나 이 반대의 한 예로, 건축의 표준화 작업이 완벽한 미국은 규격화 되어있는 모든 건축자재를 그대로 수출해 몇 가지 형식의 개인 주택을 쉽고 빠르게 지을 수 있으니, 경제적인 측면에서나 실용적인 측면에서 한옥을 능가하여 우리나라의 건축문화에 급속도로 확산 되고 있다. 우리도 한옥의 몇 가지 형태와 형식의 표준이 정해지고, 그 표준에 따른 모든 자재들이 규격화 되어야만 건축의 단가가 내려간다. 건축의 단가가 내려가면 소비자는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물론, 단가가 내려가면 질의 저하를 불러올 수도 있으나 이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지금의 우리에게 더 시급한 과제는 한옥의 다양한 확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의 의식주 문화의 근간을 형성해 온 전통의 훼손은 그 정도를 일일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했다. 현대적 삶의 기능적인 편리함과 개발도상국이 겪는 경제논리에 의하여 우리의 전통은 급속히 설 땅을 잃어버렸다. 이 증에서도 시각 이미지의 사회 심리학적인 영향과 경제논리에 가장 노출이 심한 것이 도시와 건축일 것이고 한옥도 그 파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전통의 보존과 계승도 그것이 어떠한 형식이건 간에 이 시대의 정신을 아우르려는 긴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민주적 함의(含意)를 거쳐 전통을 복원하고 지켜가려는 작은 노력들이 여기 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한 예로, 서울 가회동과 안국동 일대의 한옥마올인 북촌 가꾸기 운동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덕분에 전통을 보는 안목도 많이 변했다. 그와 더불어 한옥에서부터 실용적인 생활도구에 이르기까지 전통과 현대를 접목하고 그 접점에서 아름다움을 담아내려는 아름지기의 노력은 지속되어 왔고, 이번 전시는 그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

II.

목수 이정섭의 가구는 아름지기의 안국동 한옥과 현대적인 측면에서 잘 어울린다. 기획단계에서부터 한옥의 공간, 쓰임새, 가구의 배치, 크기 등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구상하였으므로 잘 어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가구 외, 한옥의 공간감의 조화를 우선하여 작업에 임한 것으로 보인다. 한옥의 실내공간은 대부분 수평과 수직의 기하학적 패턴을 유지하며 은은함을 자아내는데 그 분위기를 제어하듯, 냉철한 이성의 단순함이 과감하게 적용된 이정섭의 디자인은 가구라기보다 더도 덜도 꼭 있어야 할 그 자리를 차지하고 공간을 배분하고 조율하면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 노릇을 하는 듯하다.

그의 가구는 전통적인 것보다는 서구의 ‘미니멀리즘(minimalism),’ 또는 “Less is more”를 실현하고자 하는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디자인 개념에 더욱 가깝다. 아마도 대담하면서도 절제된 ‘미니멈(minimum)’의 선과 면의 조합이 이런 느낌을 들게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의 가구가 전통적인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그림을 접고, 처음 생업으로 시작한 것이 한옥 짓는 일이었다. 한옥에 빠져 전국을 쏘다니며, 그가 특히 눈여겨 익힌 것은 한옥의 구조와 재료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들이었다. 또한, 나무의 재질에 따른 여러 특성들을 체감하면서 나무를 다루는 기술과 감각에 더욱 눈을 뜨게 되었다. 좋은 나무를 확보하려고 전국을 누비면서, 소나무의 매력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그가 스스로 대목이 되어 한옥을 지을 수 있게 되었을 즈음 이정섭은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했다. 가구를 만드는 것으로 그의 미래의 생업을 결정한 것이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생각 밖의 많은 사회적인 활동을 수반하기 마련인데 성정상 이러한 활동이 이정섭에게는 맞지 않았을 것이고, 한옥 짓기가 자신이 지닌 어떤 예술적인 안목과 감각을 발휘하기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가구를 만드는 일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다. 가구는 한옥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나무를 다룰 수 있어 생업으로서의 작가적 장인기질을 충족시킬 수 있었으리라.

나무를 다루는 기반이 한옥을 짓는 일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이정섭의 가구는 저절로 전통과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의 가구가 현대적인 측면에서 서구의 냄새를 지녔으되 우리의 전통 한옥과 어울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어울림의 요인은 무엇보다도 나무가 주는 재질감의 통일성이 가구 각각의 개성을 간직하되 어떠한 일체감으로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공간을 점유하는 각 가구의 비례, 즉 높이와 넓이가 거만하지 않으면서 주어진 한옥의 각 공간을 거스르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어울림을 목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에도 적용시켰다. 한 예로, 1인 상차림의 소반이 전통에 기반을 둔 현대적 변용이라면, 벽장 안에 TV를 놓는 좌대는 현대적인 것에 기반을 둔 전통의 응용일 것이다. 이러한 소품에까지 목수의 안목이 스며있다는 것은 그가 단지 가구만 만들 줄 아는 장인이 아니라, 적어도 공간의 조건과 성격을 개념적이면서도 총체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의 소지자임을 보여준다.

III.

아름지기 안국동 한옥과 더불어 연계 전시를 하게 되는 ‘내촌목공소’는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 있다. 홍천에서 현리를 거쳐 인제로 가는 국도변에 면사무소와 파출소, 초등학교가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정섭 목수가 이곳에 들어와 정착한 지도 십여 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자신이 기거할 한옥을 손수 짓고, 번듯한 목공소 2채와 전시장에 게스트 하우스까지. 이제는 그만의 목공소가 아닌 직원 넷을 거느린 주식회사로 거듭났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면소재지 주변의 버림받아 헐릴 옛 농협창고 2채, 이발소, 상가들이 잘 보존되며 유용한 쓰임을 가질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잊혀져가는 근대의 유산을 지키고자하는 문화사업이랄까. 아름지기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주어진 현재의 조건을 그대로 껴안으며 주민과 문화로 동화하기를 시도하는 느린 템포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주)내촌목공소’ 의 꿈은 작은 시가지 전체를 각종 미술이 살아 숨 쉬는 문화마을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탈바꿈하되 과거의 건축과 모습을 보전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조화롭게 적용시키는 그런 변화를 꿈꾼다. 두 채의 농협 창고는 현재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후원인들의 도움으로 꽤 괜찮은 전시들을 유치하고 있다. 일제시기의 영향과 전형적인 1950~60년대 농촌의 모습이 남아있는 내촌은 이제 대한민국의 어디를 가건 찾아보기 힘든 그러한 모습으로 이 역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이러한 마을의 가치가 이번 전시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되었으면 한다.

IV.

전통의 현대적인 조화는 경제적 효율성만 따지지 말고, 과거의 문화와 함께 이유 있게 공존해야 한다. 여기서 공존이라 함은 그 주변과 심리적으로, 아울러 시각적으도 어울려야 한다는 뜻이다. 현대적 빌딩들로 포위된 한옥 한 채를 공존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지금 전통에 대한 입체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시점에 와있다. 단순히 전통의 대상물을 지키고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 ‘geohistory’의 입장에서 우리의 지리학과 인문학까지 포괄한 그런 전통을 생각할 때이다. 이러한 차원으로 전통을 바라보는 ‘아름지기’와 ‘내촌목공소’의 일들이 역사에 남기를 기대한다.

정영목 서울대학교 교수

exhibition_2008

목수 이정섭 가구, Gallery SUN Contemporary, 2006

이정섭과 나무, 그리고 그가 만든 가구

이 글은 평문이라기보다 작가 이정섭과 그가 ‘만들어낸 것’들에 대한 나의 이야기다.

이정섭은 나의 제자였다. 조금은 속을 썩이던, 그러나 독특했던 제자였다. 학부시절 사진을 열심히 찍었었고. 졸업전시의 회화작품이 좋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졸업 후 그의 소식이 간간 내게 들려오는데, 한옥 짓는 것을 배우려 전국을 떠돈다는 소문이었다. 왠 한옥? 그림은 안 그리고. 역시 독특하구먼 하고 생각했었다. 곧 제 길로 돌아오겠지 했는데, 그게 장난이 아니었다. 처음엔 이게 사고를 쳐도 대형으로 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은 그가 갑자기 저지른 젊음의 철부지 사고가 아니었다. 그것에는 그 나름대로의 꿈과 미래를 철저히 계산하여 하나하나 실천으로 옮겨가는 추진력과 치밀함이 있었다. 내가 이정섭을 잘못 안 것이었다. 한때. 젊음으로 낭만으로 자연을 벗 삼아 전국을 떠도는 줄 알았다.

그러던 그가 내 앞에 나타나 정색을 하고 ‘자신의 힘으로 생활의 기본적인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면 그때 가서 그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겠다던 말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와 말을 주고받는 사이 나는 그가 노동의 가치를 아는 진정성의 젊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가 ‘만들어낸 것’들에 신뢰가 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몇 년 전 강원도 홍천에 진짜로 한옥을 지었다. 자기 살 집을 순전히 저 혼자의 자본과 노동으로 그것도 아주 그럴듯하게 지었다. 처음엔 1,200여 평의 땅을 사더니 거기에 한옥을 짓고는 작업실과 전시실, 목공실까지 번듯하게 지어놓고 이제는 나무로 가구를 만든단다.

그의 한옥을 구경 갔을 때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그가 설계하고 마감한 모든 재료와 아이디어들이 그 쓰임새에 있어서 지극히 경제적이면서도 나름대로의 독특한 개성미를 지니고 있어. 이 친구 눈썰미가 보통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그림으로 다져진 눈썰미가 이정섭에게는 무언가 입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에 더욱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그매 처음 들었다. 나무에 대한 그의 애착은 한옥을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성정으로 이입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집을 짓는다는 것은 타인들과의 좀 더 사회적인. 경제적인 관계를 요구하게 되고, 작가로서 100%에 해당하는 아이디어와 노동을 발휘하기에 적합하지 못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가구는 이정섭과 기막히게 맞아 떨어진다. 우선, 그는 본질적으로 나무의 솔직함을 사랑한다. 나무는 그 스스로 부드러울 때와 곧을 때를 알고, 물을 머금고 뱉을 시기를 알며, 인간의 타고난 서정적 느낌을 배반하는 법이 없다. 나무를 다루는 이정섭의 태도 역시 나무와 닮았다. 그 운치 있는 집에 마누라는 없는데 나무는 1년 내내 끼고 산다. 좋은 나무가 출현했다면 전국 어디건 빚을 내어 일단 사다 재어 놓는 것 또한 이정섭의 배포이기에 가능하다. 그런 나무를 공정하기 위해 그 동안 그가 장만한 기계만 해도 아마 억대가 넘을 것이다.

이정섭의 가구는 순수하고 솔직하다. 그만큼 미학적으로, 혹은 기능적으로 군더더기가 없다는 말이다. 단순한 세련됨의 디자인이 나무 스스로의 맛과 멋을 지니게 하는 ‘less is more’의 개념과 통한다. 한편, 그의 가구는 치밀하다. 한 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함을 구사한다. 그러나 때로는 한 치의 오차를 조형의 미학적 차원에서 입지 않게 남겨놓는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미학과 기능을 넘어 나는 이제 이정섭이 만든 가구에서 가구가 아닌 이정섭을 나무를 통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그의 가구는 자신의 표상이 되어 하나의 스타일로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는 문화의 원천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나무로 만든 그의 두 번째 가구 개인전을 축하한다.

정영목 서울대학교 교수

자연이 좋아서 나무냄새가 좋아 산속에 혼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있다. 생선의 등뼈를 연상시키는 천장의 모습 등 집 전체가 거대한 나무 조각이다. 하루 종일 나무 깎는 일이 지루하지 않다는 이 고집스런 목수가 바로 이정섭이다. 그는 잘된 집은 자연과의 어우러짐이라 생각하기에 좋은 나무로 만들어 그런 집과 어우러지는 가구, 편안하고 실용적이어서 눈에 거슬리지 않는 그런 가구를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사람이다. 현대적인 디자인이 눈에 띄지만 그가 만든 목 가구에 손을 대면 어느새 옛 장인들이 목재를 다루는 섬세함과 마주하게 된다.

자연속의 ‘내촌 목공소’

예술에 소질이 있어 미술을 전공하고 공공미술작업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2호선 시청 역’ 지하 통로에서 선보였다. 이후 무작정 자취를 감춘 후 목수 일을 배우고 그간 충주댐 근처에서 여섯 채 정도의 집을 지으며 살다가 내촌에 정착한지는 이제 막 6년이 지났다.

그는 말한다. “똑같이 짜여진 틀 속에 맞춰 아닌 것을 맞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사는 건 방관죄에 해당 한다”라고.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에는 오염 없는 자연 그대로의 힘이 있다.

많은 단계를 바람처럼 거쳐 온 시간의 결과물이 자신의 혼이 담긴 작품으로 대신하듯 드러내니 그의 지나 온 여정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끊임없는 모색 강인한 의지

자신이 바라보는 것에만 집중하는 이 엉뚱한 재간꾼은 가구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건 나무라고 말한다. 그 속에 목수의 개입은 5분의1에 불과하며 공정 과정상 나무를 말리는 일은 목재의 특성상 제일 중요한 일임을 강조한다. 그것은 기후와 습도에 따른 틀어짐을 방지하기 위함인데 이것 역시 이론을 접하지 않고 스스로 터득한 사실이다.

이정섭은 참나무, 물푸레나무, 육송, 호두나무를 즐겨 다룬다. 나무 고유의 특징에 따라 만들어지는 쓰임새 또한 다르다며 하나하나 구별 짓는다. 옻, 들 기름 등 식물성 오일로 처리한 표면은 나무 자체의 숨결을 그대로 살려낸다. 나무 살은 사괘맞춤으로 접합 후 천연수지 본드와 때에 따라 나사못을 박고 그 자리는 틀에 맞게 나무로 마감을 해 넣는다. 그래서 견고하고 섬세하다.

얼마 전 열린 2006 서울리빙디자인 페어에서 ‘눈에 띄는 상(作品賞)’을 수상하여 기량을 평가 받은 이정섭은 이번 전시를 통해 식탁, 의자, 야외 가구 등 실생활의 기능적인 면을 지닌 가구를 선보일 예정이다.

생태적인 살림집을 짓다가 가구를 만드는 시점이기에 얼마 후 그는 또 다시 ‘진정한 사람의 집’을 만들려 또 다시 자취를 감출지 모를 일이다. 세상을 모르지만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그의 소박한 욕심이 아름답다.

권희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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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전

장욱진/김종영 Simple 2015 개관 1주년 전시, 2015, 장욱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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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극복, 2015, 신세계 갤러리 신관

極端의 克服_목수와 화가

이 전시는 서양화가 김태호와 목수 이정섭의 만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두 작가는 다루는 매체는 다르지만, 담백한 조형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간결한 미감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두 작가가 이 전시에서 교감을 나눕니다.

김태호 작가는 사물의 본질을 깊이 고찰하고 곁가지를 생략하여 극도로 절제된 색과 형태를 사용합니다. 미니멀한 캔버스 작업들은 공간의 특성에 맞추어 배치됩니다. 각 프레임의 외곽선, 패턴의 조합은 전시공간을 넓게 드로잉 합니다. 입방체 패널로 시작하여 공간으로 연결되는 구성력은 그 자체로 작품의 주제가 됩니다. 여백의 울림이 느껴지는 공간에 작가의 철학적 주제의식이 더하여져 사색적인 성격이 부여됩니다. 삶과 죽음, 슬픔에 대한 은유, ‘아무것도 없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라는 경전의 문구 등이 심미안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감을 여러겹 덧칠하여 옥색, 연회색의 아련한 색감을 보이는 작업 또한 고대 인도 철학에서 자비심을 의미하는 ‘카루나(Karuna)’의 시각적 발현입니다.형상은 사라지고 ‘보여지는 그것 자체’가 작품이 된 명상적 작업들입니다.

이정섭은 우직한 목수로, 나무 자체의 물성이 살아있는 단순한 가구를 만듭니다. 차분한 그의 가구는 자신의 경험과 과거를 재구성한 산물입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 여행에서 본 뒷골목의 단상이 나무 결에 녹아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구를 ‘군더더기가 없는 조선의 가구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업’이라고 설명합니다. 조선시대 명장들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간결한 선과 면의 교차, 재료 자체의 자연스러움, 생생한 나무의 질감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정제된 미감이 돋보이는 블랙우드는 특히 단순미가 돋보이며, 공간에 설치될 때 질서와 안정감을 획득합니다.

이 두 작가의 만남은 절제된 양식의 조화와 함께 서로의 주제 의식, 내적 의도를 교감한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전통적 캔버스 작업을 탈피한 화가 김태호와 가구 디자이너라 불리기를 기피하는 목수 이정섭은 전시장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창’으로 마주합니다.그들에게 ‘극단의 극복’이란 미니멀리즘이라는 형식주의에 얽매이기를 거부하는 태도와 의지, 혹은 대안일 수 있습니다. 겉치레 없는 목수와 화가의 교우(交友)는 오랜 벗을 만난 듯 침묵의 깊이와 기류만으로 편안한 풍경을 만듭니다.

신세계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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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앵글 프로젝트, 2009, 내촌창고

강원도 태백, 홍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 장소에서 개최되는 트라이앵글 프로젝트는 역사와 신화, 자연이라는 큰 틀 안에서 소외지역의 지역특성을 되살려보고자 기획된 국제적인 전시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하여 혹은 문화의 역사와 그것의 형성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주위의 환경들을 무심코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가. 9월 30일 태백의 <태백발언>展을 시작으로, 10월 1일 홍천의 <나무와 함께>展, 10월 2일 서울 상명대학교의 <숲으로부터> 자료전 순서로 한 달간 개최되는 트라이앵글 프로젝트는 우리의 삶 속에 이러한 질문들을 던져놓고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역사와 산, 풍경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이끌어온 한국작가 서용선과 랜드Land 아티스트로서 활동하면서 세계 각 지역의 역사와 신화에 민감한 감수성을 보여 온 일본작가 오쿠보에이치의 기획으로 착수되었다. 태백은 한 때 석탄 산업으로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장소이지만 그 수요가 줄어든 이후 현재는 사람들의 발길조차 뜸한 쇠퇴한 곳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등줄기 백두대간의 중심지이자, 일찍이 우리나라 선사문화가 자리 잡은 한국사상의 근원지로서 험한 산과 계곡이 많은 단절된 지리적 특성 때문에 토착문화의 원형이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다. 이 곳 전시의 발단은 8년 전부터 꾸준히 태백의 철암을 방문해 온 할아텍 멤버들이 철암의 폐광촌 현실과 장소가 갖는 의미를 되새기고, 발생하는 문제점에 관심을 가진 작품들을 철암역 갤러리에서 몇 차례 전시를 가지면서부터이다.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소외지역의 지역성을 되살려보고자 하는 것이다. 트라이앵글 프로젝트는 그러한 의도가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화 되어 규모를 확장시킨 국제적인 전시이다. 또한 태백과 홍천이라는 두 장소에서 발생하는 지역의 문제들을 자료전 형식으로 서울로 들여와 대도시가 갖는 문제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자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의 여러 나라 작가들은 자연과 역사, 신화라는 큰 틀에서 이 세지역의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리라 기대된다.

이번 <태백발언>전시에서는 총 12명의 작가들 -김경미, 배석빈, 서용선, 장성아, 정일영, 추인엽, 최석호, 허윤희, Andy Tomson, Mimmo, Okubo Eichi, Ole Schwarz – 이 ‘태백’이라는 장소가 가지는 역사적인 의의와 신화적 의미를 작품에 부여하고, 지금은 탄광도시로서 기능을 상실한 채 폐허가 되어버린 지역의 문제를 예술적으로 대응하고자 한다.

태백에 이어 순진무구한 자연이 보존되어 있는 홍천은 서울시 3배의 면적으로, 그 중 산지가 87%를 차지하는 지역특성을 살려 ‘나무’라는 자연소재를 주제로 한 전시를 선보인다. 전시가 이루어지는 홍천의 내촌창고는 지난 5월 대다-터치 전에 이어 네 번째 전시를 맞이한다. 30여년 전의 농협의 창고였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내촌창고 외에도 오래된 이발소를 그대로 보존하여 그 곳의 생활공간을 예술문화의 현장으로 만든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11명의 작가 – 김창세, 서용선, 유리지, 유수현, 이정섭, 장수홍, 최석호, Okubo Eichi, Mashayuki Tsubota, Fumihara Nakamura, Yoshio Nitta – 는 나무를 이용하여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오브제를 선보이며 3명의 일본작가는 홍천에 약 한 달간 머물면서 나무를 이용한 각자의 작업을 하게 된다.

태백이 갖는 현지적인 문제점과 지역의 역사. 그리고 자연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실험적인 작업과 그 안에서의 예술적 가능성을 찾게끔 하는 홍천의 전시는 ‘서울’ 대도시 안에 자리 잡게 된다. 종로구 상명대학교에서 <태백발언>과 <나무와 함께> 展에 이어 릴레이로 오픈하는 <숲으로부터>라는 제목아래 10일간 (10월 2일~ 11일) 두 전시에 관한 드로잉과 사진, 영상을 포함한 자료전이 열릴 계획이다. 태백과 홍천에서 상주하며 작업하는 작가들의 영상을 담아 그들의 열정을 ‘학교’라는 아카데미 안으로 들여오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나라의 중심지인 대도시 속에 신화나 자연의 문제를 끌어들이고 근대적 도시가 갖고 있는 문제와 폐허가 된 탄광촌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번 트라이앵글 프로젝트는 실험적인 전시이지만 자연과 역사라는 전체적이면서 근본적인생각들이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동시에 소외된 지역에 집중하여 관심을 가지고 지역문화 보존과 발전에 목적을 둔다. 이번 전시가 한국작가들을 포함한 일본, 독일, 호주, 뉴질랜드의 총 20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국제적인 문화예술 프로젝트로서 한 곳에만 국한되어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지역에서 관심을 갖고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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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대장장이의 연금술사들, 2013, 내촌목공소, 내촌창고 1&2, 내촌상회

철이라는 물질은 인간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지만 푸근하고 따뜻한 친구는 아니다. 철은 대지의 깊은 자궁 속에서 잉태되어 나온 지하세계의 생명체이다. 그것은 지상으로 나와 시간과 함께 서서히 늙어간다. 철은 인간과 맞닥뜨렸을 때 인간의 모든 감각에 대고 자신의 강인한 물성을 드러낸다. 억세고, 무겁고, 차가운 이 물질은 녹록하게 다가오는 법이 없다. 인간은 이러한 철의 존재적 양상을 변화시켜, 이 강력한 물질을 자신들의 삶속에 끌어들이려 노력해 왔다. 인간이 어떠한 형태의 개입을 통해 물질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창조적인 체험을 한다는 것은 ‘신성한 일’이며, 인간이 노동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궁극의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은 철과의 힘겨운 싸움에 혼자 나서지는 않았다. 그들은 ‘불’이라는 무기를 들고 철과의 전쟁을 준비했다. 불은 ‘수난’과 ‘죽음’에 관계하며 물질의 양상을 변환시키고 소멸시키기도 하는 자연의 연금술사이지만, 무심할 뿐이며 의도조차 없다. 인간은 이러한 불을 자신의 창조적 의지와 결합시켜 철이라는 물질과 만나왔다.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들’은 철울 다루는 4인의 작가들의 전시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철이라는 물질이 읽히는 작업이다. 철의 물성이 작가의 노동과 시간, 의도와 추구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존재양상을 결정하는 커다란 요소가 된다. 철을 다루는 작가들은 처음부터 자신이 짜놓은 전체적 그림에 재료들올 귀속시키지 아니하고 작업과정의 매순간마다 물질과 대화하며 합의점올 찾아가는 과정을 겪는다. 철이 달구어져 녹았다가 다시 모양올 잡는 순간적 체험들이 모여 형상을 이루기 때문에 작가는 작업의 전 과정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기에 작가는 잔뜩 날이 선 상태로 매순간 집중한다.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들’이라는 기획을 준비하며 오랜 시간 알아온 ‘사람’과 ‘작업’을 선택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철 작업을 해오고 있지만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때로 단순해 보일 정도로 우직하게 작업한다는 것, 그리고 작업의 최종 산물인 작품 그 자체보다 그 과정의 행위에서 의미와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결과물올 위한 과정들은 작품이 완성되면 사라져 버리거나 작품 뒤로 숨어버린다. 하지만 이들의 과정은 작품 속에 살아 숨 쉬고 때로는 작품 그 자체이기도 하다.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버리고 토끼를 잡으면 올무는 잊으라 했다. 그러나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결과물로부터 비롯되는 요즈음의 세상에서 이들의 태도는 자연 본연의 모습올 투영하며 우리의 내재적 감성을 자극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기록되거나 기억되지 않는 순간들을 바탕으로 그 생명성을 유지한다. 작업도 그러하다.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들’은 작품에 관한 전시가 아니다. 작가들이 만나는 대상, 소통하는 방식, 호흡하는 삶, 그 모습들이 또 다른 공간과 만나서 내는 하모니를 감상하는 전시이다. 방앗간에선 나무방아가 아닌 망치의 두드림이 울려 퍼지고, 옛 이발소 건물은 머리를 깎는 곳에서 ‘나’를 조각하는 곳으로, 농협의 옛 창고가 실천적 삶의 한 방식으로서의 작업을 품고, 일상의 공간을 구성하는 가구들이 들어찬 시골 목수의 가구전시장에선 또 다른 일상의 사물들이 합창을 한다.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들’을 통해 ‘지금’ ‘여기’ ‘있는’ 조각에 내재된 힘이 공간과 공명하며 만들어내는 연금술적 상상력을 즐겨보길 바란다.

이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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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다-배수경 Solo Exhibition, 2010, 내촌창고

정체모르는 실상과 이름할 수 없는 것들

꿈 중에 백미는 나는 꿈이다. 날려고 해도 못 날 때도 있고 갈수록 나는 꿈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기도 하지만 일단 나는 꿈을 꿀 때는 조금만 애쓰거나 팔을 휘적거리려하거나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곧 날 수 있게 된다.

꿈은 이상하고 알 수 없고 잘못된 것들이 나오며 괴팍하고 임의적이면서도 극명하다. 무수한 경험과 기억과 감정과 뇌파의 상태와 신체적 상황들과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마음과 상태를 매번 임의로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꿈이 직접적인 원인들을 지시하지만도 않지만 꿈은 때때로 잘 말해준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것들, 작고 나타낼 수 없고 어리석고 뚜렷하고 말할 수 없는 감정과 욕망들,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하고 섬세하고 여린 감정들과 그리고 불가능한 아름다운 것들을, 또 슬프고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느낌을 갑자기 농밀하게 만들어서 뭉클하거나 울컥하게 만든다. 꿈에서 이름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느낌들은 없는 세계를 들키게 하고 의식으로 하여금 명백히 존재하지만 다시금 없는 것인 것처럼 되돌아오게 하도록 만든다. 불분명하지만 명백한 것들은 우리를 늘 괴롭히고 뒤채게 만든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없는 것, 임의적 성질을 지닌 것, 없지만 들키는 세계, 곧 사라지는 것 같은 것들.

현실 세상의 작업으로 건너오려는 꿈의 지리멸렬상태는, 있는데 없거나 곧 사라지는 것을 다시 있게 하려는 것인데, 거기에는 임의적 성질을 그대로 유지한 채 상상, 확산적 사고, 강박증, 괜한 (큰)즐거움 같은 것들이 동원되어야 한다. 이름도 없고 계통도 없는 아메바 씨앗 같은 것이 어느 날 살아서 역시 이름 없고 정체를 모르는 것으로 자라나 키도 커지고 움직이고 마치 있는 것처럼 행동하게 만들려고 한다. 꿈은 이 세상보다 더 흥미롭고 기찬 일들이 있고 날 수도 있고 재밌는 것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꿈이 선사하는 잠시 동안의 즐거운 도망에 침윤한 듯한 이 자폐적 작업은 없는 들킨 세계가 마치 있는 것 같은, 사라지려다 다시 있는 세계이며, 없는데 있는 이름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박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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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터치전 그들의 몸으로부터, 2008, 내촌창고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의 창고에서 오는 5월 24일부터 6월 22일까지 전시가 개최된다. 이 창고는 30여 년 전 농협의 비료 창고였던 곳으로, 허물어져 가는 창고를 철거하려 할 때, 내촌 목공소의 이정섭 씨가 사들인 공간이다. 낡고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예술 공간으로 살려보자는 취지에서이다. 때문에 이번 전시는 강원도 홍천의 ‘내촌’이라는 조용하고 작은 마을의 창고에서 열리는 문화운동으로서 집중한다. 작년 여름 리모델링을 마치고 시발점이 되었던 ‘문화라는 몸짓으로’ 전과 이진경 씨 개인전 이후, 세 번째를 맞은 창고 1의 ‘대다 TOUCH’ 전시명은 붓으로 캔버스에 붓질을 하듯, 공간에 손을 대어 붓 자국을 남긴다는 의미이다.

전시는 내촌창고의 두 곳으로 나누어지는데, <내촌창고 1>에서는 서용선, 오원배, 배석빈, 허윤희, Ole Schwarz 5명 작가의 작품들로 이루어진다. 하나의 주제를 가진 전시가 아니라 ‘내촌창고’ 라는 생활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전시에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는 작가 각각의 작품세계를 펼치게 된다.

서용선의 작품 ‘동도에서 본 서도’는 동도에서 바라 본 실제 서도의 모습을 자연 현상자체에 집중하여, 독도의 우직함이 강렬하게 나타난다. 보색대비나 원색적인 강한 색채는 그의 작업핵심이다. 파란 바다와 초록 나뭇잎으로 덮인 섬의 색채와 꾸미려 하지 않는 단순함이 그의 개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현대인의 소외나 고독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 온 오원배의 작품은 실존주의에 근거하는데, 인간 각각의 실존 즉 타인과 대치될 수 없는 개인의 독자적인 실존을 강조하는 사상과 맞닿아 있다. 세련되지 않은 그 속에 진솔함이 묻어난다. 모노크롬의 색감과 두터운 마티에르 위의 붓 자국은 내촌 창고 공간의 붓 자국과 닮아있다.

현대의 일상적인 삶이 더 이상 개인의 각각의 특수성을 허락하지 않고 일반화되어 버리는 많은 것들에 대응하는 배석빈은 모호한 기호들로 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색을 칠하기 위한 색칠과 선 긋기에 대한 색채가 모호한 그의 색채 드로잉은 생각의 관습을 깨고 자유로운 생각의 작가 내면이 표현된다.

허윤희가 자주 사용하는 목탄은 그녀의 감정표출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매체가 된다. 그렸다가 지우는데 용이한 목탄의 특성이 작가의 감정이입을 돕는다. 그녀의 드로잉은 그 행위에서의 속도감과 빨려들 듯 감정을 몰입한 순간이 표현된다.

독일 작가인 Ole schwarz의 회화에는 공간과 평면, 추상과 리얼리즘의 모순이 함께 작용한다. 공간, 그리고 내부와 외부가 존재하지만, 또한 동시에 부정된다. 작가는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던지고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을 완성하기를 요구한다.

<내촌창고 2>에서는 패션디자이너 서명자의 ‘그들의 몸으로부터’ 개인전이 열린다. 오픈식에 있을 예정인 패션쇼에는 작가의 지인들 – 강미선(건축가) 구본호(경영인) 김경희(주부) 김민식(경영인) 김서령(컬럼니스트) 김정택(주부) 김태옥(화가) 고인숙(주부) 서용선(화가) 신승복(성악가) 이경희(조각가) 이인범(미술이론가) 이정섭(목수) 이진경(화가) 앨리스(주부) 진익철(공무원) – 이 모델이 되어 옷을 입는다. 그들은 모두 전문모델이 아닌, 50대 정도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주부들이다. 모델들은 옷을 입고 무대에 서는 행위 자체에서 참여의 기쁨을 느끼며 자연스러운 쇼를 구성한다. ‘옷’이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친숙한 것이다. 하지만 일괄적인 것은 어느 것 하나 없다. 같은 옷이라 하더라도 옷을 입는 사람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생성 된다. 옷을 입게 되는 사람이 어떠한 경유로 그 옷을 입고, 어떤 성향의 사람이 입느냐에 의해 개인적인 문화를 창조하게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모델로서 교육받지 않은 그들의 자연스러운 몸으로부터 서명자의 ‘옷’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단일한 주제로 묶여지는 것이 아닌,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동시대의 흘러가는 분위기보다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다. 그 관심들은 전시를 하는 공간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확실한 인지도가 있는 이들이 유명한 미술관, 갤러리가 아닌 ‘내촌’이라는 공간을 스스로 선택한 것은 내촌이 갖는 현지적인 가능성 때문이다. 오는 가을 10월에 있을 홍천, 태백, 서울 세 군데서 열리는 트라이앵글 프로젝트는 이러한 의미에서 맥락을 같이한다. 이것은 나무와 자연을 소재로 하여 국내외의 약 20여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국제적인 전시가 된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인 태백과, 산의 특성을 살려 나무를 소재로 하는 홍천, 자료 중심이 되는 서울 프로젝트는 이번 내촌창고 전시에서 더 발전된 연장선이다. 거주자가 많지 않은 작은 마을, 그 중 ‘대다 TOUCH’ – ‘그들의 몸으로부터’ 전시가 개최되는 내촌창고는 내촌면, 나아가서는 자연 속 삶의 공간들이 새로운 예술문화공간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 될 것을 기대해 본다.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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