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는 더욱 엄정하며 선線은 흔들림이 없다.

면面의 분할은 안정되고 형태는 절제된 자신감으로 단단하다.

장식 없는 서늘함은 부드러운 나뭇결이 감싸안는다.

나는 가구란 단어가 주는 순종과 침묵의 기운이 불편하다. 그래서 즐겨 ‘물건物件’이라 부르고 싶어진다.

공간에서 침묵하는 가구가 아닌 고요를 흔들어 순간 생기를 발산하는 어떤 물건.

나는 그들의 가구에서 선과 형태의 엄숙주의가 숨막히게 지배적일 때 지루하고 걱정스러운 것이다.
누구는 그래서 조선목가구의 미감을 읽지만 내겐 진부하다.
그들과 조선의 그들이 만든 가구의 유사점은 기능과 조형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 보인다.
엄숙한 비례와 장식 없는 간결함은 사물을 바라보는 정직한 시선에서 온다. 하지만 그 조화는 다르다.

효율성에 기운 건조한 기능. 정직한 시선에 보태고 뺄 건 없는 것일까.

자그마한 크기의 벚나무 상床이 있다. 잘 짜인 상큼한 비례와 간결함은 여전하다. 나는 그 색色에 홀린다.

나뭇결 속에 스미지 못하고 분가루처럼 떠다니는 색이 없다면 내겐 그냥 가구다. 발그레한 벚나무 부드러운 피부가 형태의 엄숙을 흔들 때 내겐 다시 물건이다.

‘쓸모’와 ‘보는 즐거움’이 교차하는 정교한 그물망에서 그들이 만드는 ‘가구’와 ‘물건’이 어디쯤 좌표를 잡을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움직이는 좌표. 저 둘 사이,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자생自生할 영역을 확보하는 가구들, 그래서 내겐 물건이 고픈 것들.

가구의 엄숙주의를 흔드는 그들의 어떤 모반 혹은 모험의 기미를 조금 보았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